진보ㆍ보수 패러다임의 종언

입력
2021.04.14 18:00
26면

공정ㆍ정의ㆍ평등 명제는 오염되고 훼손
?썰물(보선) 빠져 발가벗은 세력 알게 돼?
이제는 이분법적 낡은 개념과 결별할 때


오세훈(오른쪽 두 번째) 서울시장이 14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임원진과 면담하고 있다. 뉴스1

오세훈(오른쪽 두 번째) 서울시장이 14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임원진과 면담하고 있다. 뉴스1


진보ㆍ보수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이 불편하다. 우리 정치가 현실과의 괴리가 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개념과 결별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지금 여당은 진보적, 야당은 보수적이라고들 간주하지만 아무리 봐도 적절히 짝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적인가. 글자 그대로 진보(進步)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지는 것’이지만 아파트값만 높여 놨을 뿐 뭐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전진하겠다는 의지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보수적인가. 보수(保守)는 보전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뭘 지키고 있는지, 지킬 것이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특정한 가치관이라도 혹은 자투리 권력이라도 지킬 것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여당이나 야당이나 자신들의 지역구나 지지세력을 지키겠다는 성향이 강하다는 측면에서는 공히 보수적이다. 다른 지역이나 지지세력을 포용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점에서 극히 배타적이다. 포용은커녕 배척을 통해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퇴행적 행태가 만연하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지역주의 성향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번 서울ㆍ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2030의 탈이념적 성향이 강했다. 공정한 척, 정의로운 척, 평등한 척한 것에 젊은이들이 분개했다. 진보ㆍ보수 프레임은 젊은층에게 먹히지 않았다. 여당은 오히려 이들에게 ‘보수화했다’고 몰아세웠다. 그렇다고 이들이 특정 정당을 선호했다고는 볼 수 없다. '덜 나쁜' 후보나 정당에 표를 몰았을 뿐이다.

그간 여당은 집권공고화 작업에 몰두했다. 그 명분으로 검찰개혁 등을 밀어붙이다 역풍을 맞았다. 또 ‘진보’보다는 ‘보상’에만 집착했다. 야당은 특정 지역과 세대에 몰입했을 뿐 제대로 된 정책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 진보도 그렇지만, 그 극단은 더더욱 아니다. 극단은 민주주의를 마비시키고 위협한다. ‘문재인 보유국’을 외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문(文)주주의라는 논리로 귀결된다.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집단적 폐쇄성을 보이는 ‘그들만의 리그’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와중에 공정과 정의, 평등과 같은 선의의 명제들은 오염되고 훼손됐다. 이제 공정이나 정의, 평등을 외치면 손가락질당하게 생겼다. 어의전성(語義轉成)이 일어난 수준이다. '사람이 먼저'라더니 '내 사람이 먼저'였다. 그 과정은 '내로남불(Naeronambul)’이었고, 이 용어가 국제화하는 코미디가 됐다.

분노하는 젊은이들을 스윙보터(swing voter), 부동층, 중도파, 무당파로 분류하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정치 무관심층이 아니다. 무신론자와 무종교자는 다르다. 무종교자는 신은 있다고 생각하나 종교만 선택하지 않은 상태다.

선거의 결과는 특정 사건에 영향받는 일회적 현상이 아니다. 집권기간 정책결정 과정의 누적적 성과의 산물이다. 빗물이 모여 강물을 만든다. 썰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추미애ㆍ윤석열 갈등, 울산시장 선거 개입, 공수처장의 부적절한 처신, 대북정책, 경제정책 등에서 나타난 내로남불, 동문서답, 언론핑계, 무책임 등의 집약체다. 여기에 전월세 문제에서 파렴치한 행각이 드러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름을 끼얹었다.

정치는 대체로 환멸적이다. 하지만 정치 없이는 나라가 돌아갈 수 없으니 필요악이라는 것이 슬프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조재우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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