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 드리우는 '아마존 딜레마'…이유는 자사몰 생태계 성장

입력
2021.04.14 07:30
16면

자사몰에서 직접 파는 D2C 성장세
수수료·가격 압박 없어 매력적
"아마존식 모델 쿠팡엔 위협적 요인"

아마존 같은 대형 전자상거래(e커머스) 플랫폼에서 독립해 자체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고 직접 상품을 파는 D2C(Direct to Customer)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마존 같은 대형 전자상거래(e커머스) 플랫폼에서 독립해 자체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고 직접 상품을 파는 D2C(Direct to Customer)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젝시믹스'는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에겐 아주 친숙한 브랜드다. 요가와 홈트레이닝 인기와 함께 '레깅스 열풍'을 몰고 온 주역이다. 젝시믹스는 지난해 1,094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기존 선두 '안다르'를 누르고 레깅스 1위 자리에 올라섰다.

평균 2만 원짜리 레깅스를 팔아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벌려면 도처에 젝시믹스 판매처가 널려 있을 것 같지만 백화점이나 요가학원 등 오프라인 매장 판매 비중은 5%가 채 안 된다.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오픈마켓에는 아예 입점도 하지 않았다. 전체 매출의 90%가 젝시믹스 홈페이지와 앱 등 자사몰에서 발생한다.

플랫폼 도움 없이도 연 매출 1,000억 거뜬

전통판매방식과 D2C 비교. 그래픽=박구원 기자

전통판매방식과 D2C 비교. 그래픽=박구원 기자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젝시믹스처럼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는 D2C(Direct To Consumer) 성공 사례가 국내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약베개' 히트작으로 유명한 D2C 업체 블랭크코퍼레이션 매출도 2016년 42억 원에서 지난해 1,624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백화점이나 마트가 담당하던 유통 중간 채널을 이제는 아마존 쿠팡 네이버 등 전자상거래(e커머스) 기업이 꿰차면서 제조사나 판매자는 e커머스 입점이 기본 옵션이 됐다. 이 와중에 D2C는 대형 플랫폼의 도움 없이 독립적 판매 경로를 뚫었다는 점에서 그 성공이 더 부각되고 있다.

특히 플랫폼의 과도한 지배력으로 인한 '갑질' 논란과 맞물려 D2C 생태계가 개별 브랜드 및 소상공인의 성장을 유도하는 동시에 공룡 e커머스를 견제할 장치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탈(脫) 아마존 뒤에는 '반군' 쇼피파이가 있다

쇼피파이 아이콘. 쇼피파이 제공

쇼피파이 아이콘. 쇼피파이 제공

브랜드 인지도나 충성 고객이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D2C에 뛰어들 순 없는 노릇이다. 결제, 재고관리 및 마케팅에 필요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과 배송 업체도 필요하다. 해외에선 상당수 D2C 업체가 캐나다 기업 쇼피파이에 월 요금(최저 29달러)을 내고 각종 기술과 인프라를 제공받고 있다.

아마존이 각 상품이 더 잘 팔리는 것에 집중한다면 쇼피파이의 지향점은 각 상점들의 성장이다. 아마존의 고객이 소비자인 반면, 쇼피파이 고객은 판매자다. 쇼피파이 고객이 되면 아마존에 30%씩 떼줘야 하는 판매 수수료가 없고 대금 정산 지체, 가격 책정 압박 등에서 자유로운 데다 고객 데이터 직접 확보 및 유연한 할인 마케팅 등이 가능하다.

미국 D2C 시장 성장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미국 D2C 시장 성장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쇼피파이를 중심으로 '반(反) 아마존' 전선이 형성된 배경이다. 아마존에서 나와 성공적 D2C 모델을 구축한 나이키도 쇼피파이 고객사다. 아마존은 소비자 편의를 위해서라며 가격경쟁을 유도하지만 오히려 판매자가 반기를 들고 빠져나가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2019년 미국 e커머스 시장에서 쇼피파이 기반 자사몰들의 거래액 비중은 6%로 이베이를 누르고 2위에 올랐다. 2017년 68억5,000만 달러였던 미국 D2C 시장 규모는 지난해 177억5,000만 달러로 160% 급증했다.

같은 듯 다른 네이버와 쿠팡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달 2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달 2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주목할 점은 아마존의 행보를 보여온 쿠팡의 강력한 경쟁자 네이버가 쇼피파이식 서비스 확장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주주서한에서 미래 전략을 소개하며 온라인 장사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책임져 주는 '머천트 솔루션'이 네이버의 주요 요소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 상점을 열어주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각 판매자 고유 브랜딩이 가능한 자사몰 구축 영역 진입으로 해석한다.

이미 쇼피파이와 같은 서비스를 선보인 카페24는 솔루션 무료 제공, 무담보 대출 등으로 D2C 시장 확대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카페24 고객사 중에는 젝시믹스 운영사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도 포함돼 있다.

네이버까지 D2C에 가세하면 아마존처럼 소비자 중심 서비스에 치중된 쿠팡도 판매자가 떠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예상이다. 이미 농심과 LG생활건강, 영실업 등은 일부 상품에 대해 쿠팡 로켓배송용 납품을 거부한 바 있다.

쿠팡에서 철수한 한 업체 관계자는 "규정에 맞지 않는데도 반품을 하고 다른 곳보다 더 싸게 가격을 책정하라는 요구가 지나쳐 물량을 납품하다가 빼버렸다"고 전했다. 현재 쿠팡이 판매자 편의를 위해 운영 중인 프로그램은 대금 즉시정산,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야 쿠팡 트래픽이 엄청나니 판매자들이 모두 발을 걸치고 있지만 결국 본인이 유리한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D2C 생태계가 커질수록 이에 비례해 '탈쿠팡'을 택하는 업체가 늘어나는 게 자본주의 생리"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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