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히 일하고 적당히 잘 살고 싶을 뿐인데

입력
2021.04.09 19: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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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가 끝났고 오세훈이 이겼다. 선거를 앞두고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은 승패를 가를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삼십 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분명하다. 부동산이다.

다른 것 이전에, 집값 안정이 문제다. 의식주가 기본인데 지금은 기본이 안 된 느낌이다. 친구들과 푸념한다. 그때 집 샀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영끌’해서 등기 쳐 놓은 친구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도 무리하게 ‘패닉 바잉’했기 때문에 대출 이자에 세금에 불만이 많다. 이래저래 현실을 개탄하는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이제 좀 피곤하다. 집 문제로 이렇게 많은 대화가 오가야 하나?

내 바람은 소박하다. 집이 이렇게까지 중요한 대화 소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과 재테크 이야기가 대화를 잠식한 지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다시 커리어, 꿈, 사랑, 최근에 갔던 여행, 새롭게 빠진 취미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집값이 더 이상은 가파르게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실하게 직장 다니면서 돈 모으고 대출 적당히 끼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희망적이지는 않다. 오르기는 쉬워도 내려가긴 어려운 게 물가던데 한 번 오른 집값이 과연 내려갈까.

내려가지 않는 집값과 달리 최근 일주일간 암호화폐 투자는 급등락을 겪었다. 한때 비트코인이 개당 7,900만 원까지 신고가를 찍었다가 6,000만 원대까지 순식간에 미끄러졌고 이 칼럼을 쓰는 시점에는 7,400만 원 선까지 회복한 상태다. 급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에 1시간 뒤에는 얼마일지 모른다. 글로벌 가격도 한국 시장가 때문에 출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가격이 글로벌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이 10% 이상이다. 암호화폐 가격을 한국이 선도하는 셈이다.

암호화폐가 진짜 가치가 있냐 없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일반 자산에 비해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도박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2018년 대폭락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고수익에 과감하게 베팅하는 이들이 넘치는 걸 보니 요즘 말로 ‘야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지난 며칠간 순식간에 원금 대비 수십 퍼센트 손실이 찍히는 것을 보며 지금이라도 적당히 손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 고민했으나 ‘존버’했다. 남들은 수백 배 벌었는데 나만 못 벌면 ‘벼락거지’가 된 느낌이니까.

암호화폐의 인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긴 하나 유독 한국에서 뜨겁다. 한국인은 왜 유달리 암호화폐에 열을 올릴까?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인구 구성과 최신기술에 유연해 유행이 빠른 문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급등한 집값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안정적 투자만 해서는 집값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좇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코인과 주식을 하는 것도 집을 사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주식 투자를 위해 클럽하우스 증시 요약을 듣고 경제 기사를 읽는다. 이제라도 재테크에 눈을 뜬 건 다행이지만 지금 같은 과열은 정상적이지 않다. 야수의 심장이 아니어도 성실히 일하면 적당히 잘 사는 평범한 사회, 나는 그런 평범한 사회를 원한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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