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도그마’에 빠졌던 정권

입력
2021.04.11 17:00
26면

일자리·부동산 등 정부정책 모두 실패
애초 관료와 주류학자 의견 배제하고
B급 비주류연구자 저술에 의존한 탓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8일 국회에서 4·7 재·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8일 국회에서 4·7 재·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부산 보궐선거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결정적 심판임이 분명하다. 공정과 정의, 그리고 개혁을 내세운 정권이 처참하게 실패한 것이다. 흔히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는 선택적 공정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개혁을 표방하고 밀고나간 정책이 완벽하게 실패한 것 역시 정권에 대한 심판을 촉진했다.

개혁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고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론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은 자신의 새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 공약을 내세운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임금제, 공수처, 정당명부 비례대표 등을 내세웠고 안철수 대표는 공수처, 정당명부제, 결선투표제를 내세웠다. 이런 공약이 공약(空約)으로 머무른다면 다행인데, 문재인 정권은 이것을 실제로 밀어붙여서 결국 자기 발목을 잡았다.

문 정권은 공수처와 정당명부제 비례대표를 도입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이란 극약 처방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그 성적표는 처참하다. 정당명부제는 더불어민주당 스스로가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취지를 파괴했으니, 무엇 때문에 패스트트랙이란 난리굿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공수처란 그럴싸한 명칭의 특별한 기구 역시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이니 도무지 누가 어디서 그런 영감을 얻어서 추진했는지 미스테리다. 공수처로 시작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싸움은 문 정부를 '막장 코미디'로 만들어 버렸다.

문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과 임대주택등록제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는 호기있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던 다짐이 공허하게 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대가 민주당을 외면하게 된 큰 원인은 일자리 정책의 실패라고 할 것인데, 실패의 첫 단추는 소득주도성장 이론이었다. 임대주택사업을 활성화하면 집을 사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추진했던 임대주택등록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택임대의 근간이 전세라는 것도 모르고 추진한 이 정책 덕분에 갭 투자가 만연해서 집값 상승의 계기를 만들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나 반성도 없이 뒤늦게 집값을 잡겠다고 온갖 규제를 남발하고 세금폭탄을 퍼부어서 이에 저항하는 유권자들의 궐기를 초래했다.

이처럼 문 정부의 모든 정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굉침(轟沈)하다시피 한 이들 정책의 뿌리를 파고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시작은 비주류 'B급 연구자'들의 저술이었다. '소득주도성장' '비례민주주의' '부동산망국론' 같은 책들이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정책의 원천인 것이다. 임대주택등록제도 유럽의 몇몇 사례를 들어서 쓴 연구논문이 그 뿌리인데, 우리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웃기는 이야기였다.

집권세력이 관료와 주류 연구자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백안시했기 때문에 'B급 전성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축적된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인 관료사회는 소득주도성장과 임대주택등록 확대가 말도 안 되는 발상임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관료들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정권에 밉게 보일 이유가 없기에 위에서 결정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집권당을 장악한 팬덤 세력이 너무 강력한 탓에 일체의 비판이 금기화 되더니 이제는 'B급 도그마'와 함께 정권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일본 민주당의 실패로 '아베 10년'이 들어섰듯이 '제2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 역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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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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