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입력
2021.04.08 14:21

위대한 아리아인의 제국을 만들고자 했던 나치는 인종에 광신적으로 집착했다. 좋은 피는 보존하고, 나쁜 피는 제거한다는 게 지상 최대 목표였다. 아이들은 인종검사를 통해 '등급'이 매겨졌다. 피부색과 머리색 뿐 아니라 코 길이, 머리 크기 등도 우월한 인종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휴머니스트 제공

‘에리카 마트코’ 그리고 ‘잉그리트 폰 욀하펜’. 독일 함부르크의 작은 마을에서 장애 아동을 돕는 물리치료사로 살아온 한 80대 노인의 이름은 2개다. 평생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그는 58세가 돼서야, 자신의 진짜 뿌리를 찾아 나선다. 책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는 나치 시절 납치돼 히틀러에게 바쳐진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여성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이 이야기 곳곳에는 피가 흐른다. (중략) 내 이야기는 훨씬 더 비밀스러운 과거의 이야기다. 여전히 침묵에 덮이고 수치심으로 가려진 역사, 피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본질로 숭배될 때, 더 나아가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경고하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나는 레벤스보른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레벤스보른은 위대한 아리아인 제국 건설을 위한 나치의 요람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거나, 납치된 아이들은 히틀러 사진이 놓여 있는 재단 앞에서 명명식을 거쳐야 했다. '히틀러의 아이들'로 바쳐진다는 의미다. 휴머니스트 제공

피로 출발해, 피로 물든 전쟁의 아이. 여성은 자신의 운명을 비틀어놓은 ‘레벤스보른(Lebensborn·생명의 샘) 프로젝트’를 세상에 폭로한다. 위대한 아리아인 제국 건설이 지상 최대 목표였던 나치는 인종에 광신적으로 집착했다. ’좋은 피’는 “찾아내고 보존하고 늘려야 할 소중하고 신성한 존재”였지만, ‘나쁜 피’는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잔혹한 홀로코스트는 좋은 혈통을 지키기 위한 제반 작업이었다. 독일인이어도 장애를 가졌다면 혈통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대를 끊어놨다. 끔찍한 비움 뒤엔 악랄한 채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미혼모 지원 복지단체로 등록된 레벤스보른은 ‘좋은 피’의 출산과 양육을 책임지는 요람이었다.

나치는 독일인과 신체적 특징이 비슷한 점령국 아이들도 납치해 인구 수급에 나섰다. 1942년 8월, 유고슬라비아의 도시 첼예에서 나치에 납치된 아이들이 인종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나치는 급한 대로 우수한 ‘품종’으로 발탁된 친위대 후손 퍼뜨리기에 열을 올렸다. 독일 내부에서조차 도덕적 비난이 일었지만, 혼외 성관계를 공식적으로 용인하고 장려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인구 ‘수급’이 여의치 않자 독일이 점령한 국가들로 눈을 돌렸다. 순수 아리아인 혈통의 신체적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을 마구 잡아 들이기 시작한 것. ‘독일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집단 납치 범죄였다.

1942년 8월 나치가 점령한 유고슬라비아 첼예라는 도시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유격부대원의 딸로 태어난 생후 9개월 된 에리카 마트코도 그 희생자 중 하나다. 그는 ‘흰 피부와 파란 눈, 금발’이 아리아인과 닮았단 이유로,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란 독일인 이름을 새로 얻으며 히틀러의 아이로 낙점됐다.

잉그리트 폰 욀하펜(80)이 세상에 기록된 첫 번째 공식 문서는 레벤스보른에서 발급한 예방접종 증명서였다. 너무 늦게 자신의 뿌리를 찾게 된 저자는 레벤스보른 피해자들과 함께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레벤스푸렌'(생명의 흔적이라는 뜻)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나치는 인종 검사를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하듯 했다. 한 번 통과됐다 하더라도 하자가 있으면 바로 탈락시켰다.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났거나 양육된 아이들이라도 성장 과정 중에 발달지체나 질병, 정신적 장애가 눈에 띄면 ‘아동병동’이란 곳에서 곧장 살해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위탁 가정에서 길러졌다. 에리카, 아니 잉그리트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살갑지 않았다. 나치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모정은 더 빠르게 식어갔다. 뒤늦게 발견한 엄마의 육아일기는 마치 실험 대상을 관찰한 수감 일지 같았다. 친부모가 아니란 걸 일찍이 알았지만, 당시엔 전쟁 고아가 많았으니 애써 아는 척하지 않았다. 1999년 ‘친부모를 찾고 싶으냐’는 독일 적십자사의 전화를 받은 뒤 그는 60여 년간 감춰온 진실을 마주한다.

삶의 퍼즐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통일된 새 독일 정부는 동독 통치자들의 잘못을 색출하는 데 목을 맬 뿐, 민족의 치부인 나치의 만행을 들추는 일엔 관심이 덜했다. 유고슬라비아 역시 무너졌고, 그 자리에 들어선 슬로베니아의 협조는 더뎠다. 오랜 기다린 끝에 얻은 결론은 더 고통스러웠다. 친부모의 기록을 확인했지만, 에리카 마트코란 이름의 여성도 함께였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나섰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서도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잉그리트도, 에리카도 아니었다. 진짜 아무도 아니었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잉그리트 폰 웰하펜, 팀 테이트 지음·강경이 옮김·휴머니스트 발행·272쪽·1만6,000원

우월한 피를 찾겠다는 광기의 끝은 이토록 허무했다. 그렇다면 나치가 엄선해 골라낸 레베스보른의 아이들은 그들의 희망대로 초인적 존재로 컸을까. 저자가 만난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더 크지도, 강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질병과 장애가 있지요.” 오히려 그들은 어떤 면에서 평범 이하의 삶을 살았다. 뿌리를 잃어버린 채 살아온 슬픔과 좌절, ‘레벤스보른의 아이’였다는 정서적 상처와 수치심에 평생 짓눌리면서 말이다.

책은 극단적 인종주의가 야기한 나치 시절의 범죄에 국한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종 간 차별과 증오, 갈등, 폭력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지점이 적지 않다. 저자는 '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놓칠 때 비극은 반복된다고 경고한다.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소멸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우수 인종과 열등 인종이 따로 있다는 신념의 또 다른 버전으로 정치인들은 민족주의를 만지작거리며 인종적 역사적 역동성을 토대로 한 증오에 불을 붙이고 있다.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이제껏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배워야 할 때다.”

강윤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