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 운동화’가 뜨는 이유… 불확실한 시대에 군복 패션이 유행한다

입력
2021.04.08 04:30

1970년대 독일 연방군의 군인들이 활동할 때 신었던 운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메종마르지엘라의 스니커즈. 메종마르지엘라 홈페이지 캡처


“요즘 ‘독일군 운동화’ 신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많이 입는 조거팬츠나 후드티도 다 군복에서 나온 거고요. 자기도 모르게 군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군복이라니. 군복은 패션의 범주가 아니지 않은가. 남보람(47)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반격했다. 그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티셔츠나 재킷, 모자나 구두도 그 기원이 군복인 경우가 상당수다”라며 “기능과 실용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군복과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패션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최근 군복과 패션의 관계를 흥미롭게 살핀 책 ‘전쟁 그리고 패션Ⅱ’(와이즈플랜 발행)를 출간한 남 연구원과 전화로 만났다.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전쟁사 연구장교였던 그는 2012년 미 육군군사연구소 교환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옛 사진 한 장에서 군인들이 입은 군복과 부대마크만으로 6ㆍ25전쟁 때 활약했던 8240부대의 존재를 60년 만에 확인하며, 군복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후 본격적으로 군복을 연구해왔다.

'사파리 재킷'의 원조인 프랑스군의 1892년형 군복(왼쪽부터), 영국군의 1937년형 군복, 1941년형 열대 제복. 와이즈플랜 제공


2차 세계대전 말기 총을 멘 채 빨래를 하는 미 해병대원. 오른쪽 대원의 상의가 초기 형태의 티셔츠이다. 와이즈플랜 제공

그에 따르면 군복이 패션에 영향을 끼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1차 대전 때 영국 군인들이 입었던 방수 코트에서 유래한 트렌치코트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입는 티셔츠도 미 해군들이 상ㆍ하의가 붙은 미국식 속옷(유니온 수트)을 잘라 입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간절기 대표 패션 아이템인 ‘사파리 재킷’은 아프리카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입었던 ‘열대 제복’에서 비롯됐다. ‘야상(야전상의)’의 원조는 미 육군이 2차 대전 때 개발한 전투복장이다. 청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는 ‘청ㆍ청 패션’도 1901년 미 해군의 작업복인 일명 ‘덩거리’에서 발전했다.

남 연구원은 “피카소가 즐겨 입은 초록색 줄무늬 티는 러시아 해병대 군복과 비슷하고, 샤넬이 승마할 때 입었던 바지는 독일군 기갑 장교들이 입었던 것이다”며 “피카소나 샤넬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입었듯이 우리도 은연중에 군복과 비슷한 옷을 많이 입는다”고 말했다.

군복은 현대 패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와이즈플랜 제공

군복은 어떻게 현대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을까. 남 연구원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패션과 군복이 나눠질 뿐 본류는 같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예컨대 샤넬은 미적인 관점에서 트위드 재킷에 주머니를 두 개만 달았고, 군대에서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상의 재킷에 주머니를 두 개만 단다. 그는 “한쪽은 극도의 우아함을, 다른 한쪽은 극도의 실용성을 추구하다 보니 결과(주머니가 두 개 달린 재킷)가 같아졌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부족의 신발에서 영감을 얻은 ‘추카 부츠’도 군복과 패션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신발을 신어본 영국군이 이를 활용해 전투화로 개발했고, 이를 패션회사가 미적 디자인을 강조한 ‘로 대중화시켰다.

군복과 패션의 관계를 흥미롭게 살핀 '전쟁 그리고 패션 2'의 저자 남보람 국방부 선임연구원. 남보람씨 제공


남 연구원은 “군복과 패션은 목적과 용도는 다르지만 최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같다”며 “군복이 최고의 실용성을 쫓다 보면 결국 최고의 미적 가치를 쫓는 패션과도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군복 패션이 더 유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 역사적으로 보면 대중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강력한 리더를 원했어요. 그런 리더십에 대한 욕구가 패션에도 반영됩니다. 앞으로 제복 패션이나 위장 패션이 길거리에 자주 등장할 겁니다.”

강지원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