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트롯' 무대뒤 추락사고 2년 "10분 앉아 있기도 힘든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입력
2021.04.08 04:30
석재욱 촬영감독 사고 후유증 고통
방송 노동자 안전 사고 불감증 여전

2019년 tv조선 '미스 트롯' 세트 촬영장에서 카메라를 점검하던 석재욱 촬영감독이 5m 아래로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방송 캡처


석재욱(가운데) 촬영감독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13개 단체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TV조선 등에 "산재 피해자 석 감독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한빛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석재욱 촬영감독은 햇수로 3년째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신세다. 10분 이상 제 힘으로 앉아 있기가 힘겨워서다. 폐쇄성 요추 골절 및 기타 경추 골절, 늑골 골절, 간질, 폐좌상 진단을 받고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던 후유증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증도 깊다. 현업 복귀는커녕 일상을 꾸리는 것조차 어려워 늘어난 건 빚뿐이다. "의사가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던 2년 전 추락 사고 때문이다.

석 감독은 2019년 2월 TV조선 '미스 트롯' 세트장에서 촬영 장비를 설치하다 5m 높이에서 떨어졌다. 그가 올랐던 구조물에는 안전 장치는 물론 추락 방지 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스태프 안전 교육이나 안전관리 책임자도 없었다. 석 감독의 부인인 권모씨는 7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조치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고 울분을 토했다. 2017년 tvN 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에서의 추락 사고, 2019년 OCN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 촬영장 교통사고, 지난해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야외 촬영 중 화재 사고 등 방송 제작 현장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다치고 아픈 건 노동자 개인의 몫'인 현실

화려한 무대 뒤 방송 노동자의 안전은 여전히 뒷전이다. 방송 촬영 현장은 언제든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장시간·야간의 노동 환경에다 제작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촬영을 강행하는 가운데 사고는 필연적이다. 절벽이나 달리는 차량 위, 폭발이나 화재 현장에서도 안전장치 없이 촬영을 위해 내몰리는 경우가 속출한다.

외주제작이 많은데다 방송 노동자 대부분이 프리랜서부터 파견직 등 불안정한 고용 관계에 있다 보니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모호한 것도 문제다. 석 감독의 사례처럼 다치고 아픈 건 오롯이 노동자 개인의 몫이 된다. 석 감독은 TV조선과 자신이 속해있던 촬영 외주업체 씨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2년 넘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TV조선 측은 "사고의 직접적 책임자는 아니지만 유관방송사로서 사고 직후 위로금을 전달했고, 관련 외주업체에도 사고 처리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는 입장이다.


"'발주처' 방송사가 사고 책임져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곧 안전 사고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 부재로 이어진다. 김기영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비슷한 사고가 여러 번 나도)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촬영 인원을 위험한 자리에 놓고 찍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며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방송업은 산업안전보건법의 테두리에서도 비껴나 있다.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이면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 1명씩을 두게 돼 있지만 외주제작사의 경우 50인 미만의 영세업체가 많다. 현장의 대다수 방송 노동자가 안전보건관리체제에서 배제돼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방송업에 맞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방송 제작 현장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흩어지는 프로젝트 기반인 만큼 사업장뿐 아니라 제작비나 사업 기준의 별도 안전보건관리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방송사가 안전 비용을 부담하고, 이를 계약서에 넣거나 방송사 차원의 안전보건 가이드라인과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드는 등 방송사의 책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체 제작과 외주를 불문하고 방송사가 발주처로서 안전에 대한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영 지부장은 "지금처럼 사용자가 누군지 불분명하다고 조용히 넘어가면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중간에 제작사나 하청업체가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만큼 방송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보다 촬영·방영을 우선하는 방송업계 내부의 뿌리 깊은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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