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호통쳐도 마약에 취한 中 공무원들

입력
2021.04.11 14:30
16면
구독

후난성 '마약 도시' 오명, 공무원 모발 전수검사도
4년간 공직자 마약사범 400명, 女간부 사망 충격
시진핑 '마약과의 전쟁' 선포 불구, 투약 사건 잇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4일 푸젠성 푸저우에 있는 역사문화의 거리 '산팡치샹'에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푸저우=신화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4일 푸젠성 푸저우에 있는 역사문화의 거리 '산팡치샹'에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푸저우=신화 뉴시스

중국 공직사회가 마약에 취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엄단을 촉구했지만 적발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일부 지역에서는 관공서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모발 검사에 나섰다. 공무원이 연루된 잇단 마약사건에 “중국 전역의 공직자를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마약 도시’라는 오명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는 건 중국 후난성이다. 융순현은 지난달 29일 공직자 마약검사를 시작했다. 모발을 분석해 마약 투약 사실이 드러나면 공직에서 퇴출시키기 위해서다. 첫날 6명이 적발돼 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달 말까지 공무원 1만2,000명을 모두 조사할 계획이다. 융순현에서는 지난해 마약사건 195건을 적발해 마약중독자 208명을 체포했다. 압수해 폐기한 헤로인과 필로폰은 각각 3,528g, 312g에 달한다. 1회 투여량(0.03g) 기준, 12만8,0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현 전체 인구(44만8,900명)의 29%에 달한다.

중국 후난성 융순현에서 지난달 29일 공무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봉지에 담고 있다. 모발 검사는 소변이나 타액 검사와 달리 6개월이 지나도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달 말까지 1만2,000명을 전수조사하는데, 3월에만 6명이 적발돼 해임됐다. 펑파이 캡처

중국 후난성 융순현에서 지난달 29일 공무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봉지에 담고 있다. 모발 검사는 소변이나 타액 검사와 달리 6개월이 지나도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달 말까지 1만2,000명을 전수조사하는데, 3월에만 6명이 적발돼 해임됐다. 펑파이 캡처

헝양시 치둥현은 지난해 5월 ‘여성 당 간부 마약사건’으로 중국을 발칵 뒤집었다. 문화관 부관장 스(施)모씨가 마약 복용 후 경련을 일으키다 숨졌기 때문이다. 공안 조사결과 친구 10명과 회식을 하면서 음주가무와 함께 단체로 마약을 투약했는데 이 중 절반인 5명이 공직자로 드러났다. 2017년 공산당원과 공무원 12명이 무더기 적발된 지 2년 만에 마약사건이 또 터졌다. 린샹시에서는 2015년 4월 시장이 마약 투약혐의로 입건됐고, 2018년 11월에는 공안국 직원을 포함한 공직자 5명이 검거됐다. 2015~2018년 후난성에서 적발된 공직자 마약사범은 400명을 웃돈다.

치둥현의 충격적인 마약 사망사건 직후 시 주석은 “전통 마약과 신형 마약, 온ㆍ오프라인 마약범죄가 뒤엉켜 인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 사회 안정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약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각급 당 위원회와 정부가 책임지는 태도로 마약과의 인민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후난성은 올해 업무보고에서 “마약 등 강력범죄를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재차 다짐하며 정책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마약에 중독된 중국인은 214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후난성이 마약의 온상이 된 원인을 지리적 특성에서 찾기도 한다. 남부 접경지역을 통해 중국 본토로 마약을 밀매하고 유통하는 주요 거점이라는 것이다. 후난성 법원에서 지난해 선고한 마약 관련 1심 판결 7,146건 가운데 60%인 4,292건은 마약 투약이 아닌 밀수, 판매, 운반과정에서 적발된 경우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 가장 큰 인명피해를 입은 후베이성이 바로 인접해 있어 방역에 치중하느라 내부 관리감독이 느슨해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