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가 내뱉은 팔, 범인은 누구일까

입력
2021.04.09 05:00
<14> 호주 '샤크 암'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35년 4월 쿠지 수족관에 반입된 뱀상어. 호주 최고 미제사건으로 기록된 살인 범죄의 단초가 된 상어다. 시드니 지역일간 트루스 제공

1935년 4월 25일. 호주 현충일인 ‘앤잭데이(Anzac Day)’를 맞아 시드니 인근의 한 물 간 휴양지 쿠지 해변이 오랜만에 붐볐다. 얼마 전 쿠지 앞바다에서 잡은 대형 뱀상어가 해변 수족관에 전시됐기 때문이다. 뱀상어는 포악한 성질로 바다의 호랑이로 불리는데다, 수족관에 들어온 상어는 길이가 4m나 돼 구경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그 때였다. 구경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뱀상어가 갑자기 심기가 불편한 듯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이내 입에서 무언가를 연이어 토해냈다. 첫 번째 나온 건 새, 두 번째는 쥐였다. 마지막으로 어떤 동물을 내뱉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곧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어 입에선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왼쪽 팔이 나왔다. 행락객들은 바다 호랑이가 사람까지 잡아먹었다며 수근댔다.

이빨자국 없는 팔, 살인을 가리키다

상어가 토해낸 팔에 남아있던 문신. 남성 두 명이 글러브를 끼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트루스 제공

수족관은 즉시 영업을 접고 경찰을 불렀다. 하지만 상어가 사람을 삼켰다고 단정하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았다. 인간을 잡아먹고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면 다른 인체 부위도 토할 법한데, 상어 몸에서 나온 건 오직 팔 뿐이었다. 그러자 상어가 물에 빠진 사람의 팔만 뜯어 먹었다는 추정이 나왔다. 이 추론 역시 팔에 상어의 이빨 자국이 전혀 없다는 반론에 부닥쳤다. 팔 위쪽 절단면은 흉기로 자른 듯 깔끔했다.

남은 가설은 하나였다. 누군가 팔의 주인을 살해한 후 시신을 토막 내 바다에 버렸다는 것. 상어는 토막 난 시신 중 팔만 삼켰고,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휴일 한 낮의 볼 거리가 일순 ‘살인 사건’으로 비화한 것이다.

경찰은 처음엔 범인을 금세 찾으리라 자신했다. 다섯 손가락이 모두 온전하게 남아있어 지문만 대조하면 피해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난관은 바로 닥쳤다. 상어의 위액이 지문을 손상시켜 신원 확인은 불가능했다. 사건이 다시 미궁에 빠지려는 순간, 수사팀은 팔에 남겨진 다른 단서에 주목했다. 마찬가지로 위액에 지워져 흐릿하긴 했지만, 손목 부분에 남성 2명이 글러브를 끼고 스파링을 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경찰은 문신 사진을 노출하는 등 공개 수사로 전환하고 피해자를 수소문했다. 며칠 뒤 에드윈 스미스(43)라는 남자가 수사팀을 찾아와 형인 제임스 스미스(45)의 손목에 똑같은 문신이 있다고 증언했다. 형 스미스는 4월 7일 크래놀라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이튿날부터 실종 상태였다.

스미스는 영국 태생으로 전직 복서였다. 스파링 문신을 팔에 새긴 이유도 설명됐다. 사망 당시 그는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쿠지 해변 근처 글래스드빌에선 꽤 유명한 업소였다.

살인 사건 피해자 제임스 스미스


죽음 부른 범죄수익 다툼

피해자가 확인되자 경찰은 스미스의 마지막 행적부터 훑어나갔다. 목격자 진술을 통해 휴가를 떠난 당일 밤 그가 패트릭 브래디(42)란 남자와 호텔에서 카드 게임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둘은 카드를 치다 늦은 밤 바 영업이 끝난 걸 확인하고 브래디가 빌린 근처 오두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음 날 스미스는 사라졌다.

누가 봐도 브래디가 오두막에서 스미스를 죽인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정황도 충분했다. 브래디는 스미스가 당구장을 운영하며 알게 됐는데, 위조 혐의로 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였다. 오두막 주인은 브래디가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대여를 반납했고, 들어가 보니 시트와 베개가 새 것으로 교체돼 있었다고 경찰에 말했다. 범행 증거를 지우려 한 시도가 분명했다. 그날 밤 오두막 근처에서 브래디를 태웠다는 택시기사도 등장했다. 기사는 그가 뒷좌석에서 무언가를 꼭 안고 있었고, 몹시 불안해 보였다고 회상했다. 브래디가 향한 곳은 지역 유명 사업가인 레지널드 홈즈(42) 집이었다. 수사팀은 5월 16일 브래디를 스미스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스미스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패트릭 브래디

경찰의 다음 화살은 자연스레 홈즈로 향했다. 브래디가 찾아와 무슨 말을 했는지 홈즈를 추궁했다. 그러나 그는 브래디와 만남 자체를 부인하더니 며칠 뒤엔 자신의 스피드보트에서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다행히 총알이 관자놀이를 빗겨가 극적으로 생존했고, 의식을 되찾은 홈즈는 결심이 선 듯 수사팀에 모두 털어놓겠다고 했다.

경찰이 밝혀낸 진실은 이랬다. 사실 스미스, 브래디, 홈즈는 3인조 범죄단이었다. 홈즈는 쿠지에서 3대째 보트 제조업체를 운영하며 지역 유지 행세를 했다. 하지만 그에겐 알려지지 않은 이면이 있었다. 또 다른 직업은 마약 밀매상과 보험사기꾼. 당구장을 다니며 어울리게 된 스미스와 브래디와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스피드보트를 타고 쿠지 앞바다에서 코카인 거래를 한 뒤 배에 일부러 불을 내거나 침몰시켜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을 썼다. 위조 전문가인 브래디의 경력을 살려 수표 위조에도 뛰어들었다.

돈독했던 셋 사이의 우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금이 갔다. 스미스가 자기 몫을 더 많이 요구한 것이 발단이었다. 브래디는 스미스가 돈을 더 가져갈 만큼 범죄 기여도가 높지 않다고 여겼다. 게다가 마지막 보험사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홈즈의 주머니 사정도 나빠졌다.

홈즈는 지분 다툼이 계속 심해지다 결국 브래디가 스미스를 죽였다고 실토했다. 브래디가 자기를 찾아온 것도 사실이었고, 그가 택시에서 안고 있던 건 스미스의 왼팔이라고 주장했다. 브래디는 스미스의 시신을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후 홈즈를 협박할 요량으로 문신이 있는 왼팔만 남겨뒀다.

브래디는 팔을 보여주며 살인을 했으니 도피 자금으로 500파운드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홈즈의 정체를 폭로하겠다고도 했다. 브래디는 스미스의 왼팔을 남긴 채 홈즈 집을 떠났고, 겁에 질린 그는 팔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 팔을 수족관에 잡혀 온 뱀상어가 삼켰다는 게 경찰이 내놓은 사건의 전말이었다.

유일한 증인의 죽음, 진실은 어디에

스미스 살인사건의 유일한 증인이었던 레지널드 홈즈

호주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샤크 암(상어 팔)’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홈즈도 법정에서 브래디의 범죄 사실을 증언하기로 했다. 반전은 재판 당일인 6월 12일 일어났다. 홈즈가 자신의 차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것. 총상 3발, 누군가 홈즈를 저격한 흔적이었다. 경찰과 이웃들은 단번에 브래디의 사주라고 의심했지만 목격자도 증거도 없어 범인을 알아낼 길이 도통 없었다.

여파는 당연히 스미스 살인 건에도 미쳤다. 유일한 증인 홈즈가 사망하자 브래디 측 변호인은 모든 증거는 심증뿐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토막 살인을 증명하려면 팔 말고 몸의 다른 부분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검찰에 큰 소리를 쳤다. 군경이 쿠지 앞바다를 샅샅이 뒤졌으나 다른 시신 조각은 끝내 수거되지 않았고, 뱀상어의 배를 갈라 봐도 없었다.

변호인의 전략은 주효했다. 그 해 9월 브래디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는 1965년 4월 72세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자신은 스미스, 홈즈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건 개요도 죄다 드러났다. 당사자 3명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다. 단죄만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증인의 죽음으로 진실의 문턱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샤크 암 사건이 호주 제일의 미제사건으로 이따금 입길에 오르는 까닭이다.

샤크 암 사건을 대서특필한 트루스 보도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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