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사장'보다 앞선 LH 정 차장...실체 드러나는 집단 투기 의혹

입력
2021.04.06 20: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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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의 한 밭에서 심은 지 한 달이 채 안 돼 보이는 과실수 묘목이 자라고 있다. 과실수 옆으로 논이었던 흔적이 보인다. 서재훈 기자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의 한 밭에서 심은 지 한 달이 채 안 돼 보이는 과실수 묘목이 자라고 있다. 과실수 옆으로 논이었던 흔적이 보인다. 서재훈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집단 투기 의혹의 '뿌리'가 전북지역본부 정모 차장으로 좁혀지고 있다. 정 차장은 환지 보상 전문가로,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구속영장을 신청한 LH 직원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LH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재직한 정 차장, 정 차장과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된 전주시민 이모(57·법무사)씨의 행적을 좇으면 광명·시흥지구에서 벌어진 조직적인 투기 정황이 드러난다.

6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이씨는 2017년 3월 7일 자신의 가족 등 개인 8명, 본인이 세운 법인 한 곳과 함께 노온사동의 네 필지를 샀다. 당시 공동 매수자 중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54)씨도 있었다. 그는 같은 날 또 다른 두 명과 노온사동 밭 1,319㎡를 사기도 했다.

그 다음 달부터 외지인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서울 거주자 이씨의 밭 인근 땅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임모(65)씨가 해당 토지 근처에 있는 밭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까지 외지인들이 구입한 필지 최소 열두 곳이 이씨 땅으로부터 250m 이내에 있다. 매수자 중에는 전주 거주자도 다섯 명이나 됐다.

특수본은 이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LH 내부 정보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3월 이씨의 밭으로부터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있는 필지 네 곳이 같은 날 매매됐는데, 당시 매수자 8명 중 김모(55)씨를 비롯해 절반이 전주 거주자였다. 이들이 전주에서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현재 광명·시흥지구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모모(58) 차장의 가족과 동일한 곳이다.

광명·시흥지구 내 외지인 조직적 매수 의혹 토지 중 일부. 강준구 기자

광명·시흥지구 내 외지인 조직적 매수 의혹 토지 중 일부. 강준구 기자

투기 의혹이 집중된 토지들은 증여도 활발했다. 2018년 3월 김씨와 함께 노온사동 네 필지 중 한 곳을 매입한 배모(59)씨 등 두 명은 올해 2월 자녀로 추정되는 배모(25)씨에게 토지를 모두 증여했다. 노온사동 소재 또 다른 밭을 2017년 7월 5명과 공동 매입한 한모(67)씨 또한 이듬해 10월 자녀로 보이는 한모(38)씨에게 본인의 지분을 증여했다. 이를 통해 토지주들은 절세는 물론, 높은 토지보상까지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노온사동의 다른 지역에서도 투기 의혹은 드러나고 있다.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씨는 2017년 3월 26일 논 1,276㎡를 가족과 함께 매입했다. 이후 그해 4월과 2017년 10월에 걸쳐 해당 토지로부터 400m가량 떨어진 필지 두 곳이 연달아서 팔렸는데, 매수자 모두 외지인이었다. 해당 토지주 가운데 한 명은 본인 지분을 증여한 한씨다.

한국일보는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씨에게 노온사동 토지 매수 경위를 직접 묻기 위해 연락을 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가 운영하는 사무소의 직원은 "이씨가 오늘부터 병가 중"이라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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