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태현에게 살해당한 큰딸, 인생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입력
2021.04.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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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 세 모녀 비극' 큰딸 지인 인터뷰
"마음 여리고 착해… 원한 살 사람 아니었다
신상 노출 극히 꺼려… 주소 알렸을 리 없어"

세 모녀가 숨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한쪽에 누군가 두고 간 꽃 두 다발이 놓여 있다. 윤한슬 기자

세 모녀가 숨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한쪽에 누군가 두고 간 꽃 두 다발이 놓여 있다. 윤한슬 기자

"누구에게 원한을 살 사람도 아니고, 마음 여리고 참 착한 친구였어요. 인생도 열심히 살았고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피의자 김태현(25)이 세 모녀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세 모녀 중 큰딸로 김태현의 스토킹 대상이었던 A씨의 지인 이상기(가명)씨는 6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거듭 이렇게 강조했다. 숨진 A씨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일부 추측성 보도들이 더 이상 재생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씨는 A씨와 지난해 말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여럿이 팀을 맺는 게임 특성상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됐다. A씨가 '잘 이끌어준 덕에 즐겁게 게임을 했다'며 이씨에게 게임 아이템을 선물한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하고 꾸준히 통화했다. 게임에서 만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이였지만, 직장이나 가족을 화제로 이야기하거나 고민 상담도 하면서 꽤 가까운 친구가 됐다고 이씨는 말했다.

"퇴근길 통화하자던 A씨… 스토킹 때문이었을까"

이씨는 A씨를 "심성이 착하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연락을 주고 받던 중에 내가 직장을 그만두자 A씨가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그만두지는 못했다"며 "일이 고돼 힘들어하면서도 항상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5일 신상이 공개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 오른쪽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뉴시스

5일 신상이 공개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 오른쪽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뉴시스

그러나 이씨는 A씨가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1월 말쯤부터 A씨가 퇴근길에 종종 이씨에게 '심심하다'며 통화하자고 했는데, 이번 사건이 있고 나서야 이씨는 '스토킹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그랬던 걸까'라고 추정해볼 뿐이다. 이씨는 "A씨가 보통 밤 10~11시에 퇴근하는데, 이때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A씨가 집에 도착하면 함께 게임하는 식이었다"며 "전화번호를 한 차례 바꿨을 때도 '정리할 게 있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을 A씨 지인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A씨가 김태현의 스토킹 행위 때문에 휴대폰을 바꿨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심스러웠던 사람… 스스로 주소 알려준 게 아닐 것"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김태현이 A씨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 침입해 범행한 것을 두고, 이씨는 "A씨가 자발적으로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김태현은 A씨가 단체 대화방에 게시한 '배달 인증' 사진에서 피해자 주소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A씨가 평소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신상정보를 누설하지 않으려고 조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는 사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피의자가 A씨와 게임에서 만난 사이가 아니라 실제 친구일 수도 있겠다'고 잠깐 생각했다고 한다. 이씨는 "A씨가 처음 유료 아이템을 선물로 줬을 때 돈으로 돌려주려고 했지만 계좌번호를 극구 알려주지 않아 선물로 대신했다"며 "이후에도 A씨에게 디퓨저 등을 받고 나도 선물을 보냈는데 이때도 직장 주소만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씨는 A씨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태현이 세 모녀를 살해하기 전날에도 A씨와 게임 중 채팅으로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같이 게임하자고 했는데 A씨가 "출근해야 해서 이만 자겠다"고 했던 게 마지막 말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이후 A씨와 연락이 끊겨 '나와 연락을 그만하려고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A씨란 걸 알게 돼 무척 안타깝다"고 한숨을 쉬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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