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혁명'의 보복

입력
2021.04.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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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셀룰로이드의 발명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지구 해양 생태계. 그린피스 사진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지구 해양 생태계. 그린피스 사진

'인류세(人類世)'라는 새로운 지질시대 구분이 아직은 확정적 지위를 얻지 못했고 기점, 기준을 두고도 여러 제안이 분분하지만, 이 용어가 대중적 공감과 동의를 얻는 덴 성공한 듯하다. 확실한 건 어떤 지질시대도 영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류세란 명명에도 유언(遺言) 같은 불길한 전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기준이 될 만한 인류세의 지질학적 특징으로 제안된 것들, 예컨대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물질, 이산화탄소 농도,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만 봐도 그렇다. 엄청난 양이 소비되는 닭의 뼈를 꼽는 이도 있다. 닭은 공장식 축산을 대표할 만한 종이다.

현대 문명의 동력으로 각광받다가 기후위기의 주범이 된 디젤엔진(1892년 특허)의 예처럼, 인류가 '플라스틱'의 편리와 풍요에 취한 시간도 고작 150년 정도다. 미국 발명가 존 웨슬리 하이어트(John Wesley Hyatt(1837~1920)가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셀룰로이드(celluloid)'의 발명 특허를 1869년 4월 6일 획득했다. 껌, 곤충 분비물 수지인 셀락(chellac)의 대체물이었다.

하지만 셀룰로이드가 탄생한 직접적 계기는 당구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당구공은 코끼리 어금니 즉 상아로 가공됐다. 상아는 당구공뿐 아니라 체스의 말, 칼 손잡이 등 경질의 기호품 재료로 널리 쓰였지만, 무척 비싼 재료였고 가공성도 썩 나빴다. 뉴욕의 한 당구공 업체가 대체제를 공모했고, 하이어트가 수년의 연구 끝에 내놓은 게 셀룰로이드였다. 셀룰로이드는 질산섬유소 니트로셀룰로오스에 가소성 물질인 장뇌를 섞어 에틸알코올로 녹인 뒤 알코올 성분을 증발시켜 굳힌 물질. 값싸고 단단하고 물에 강하고 가공성도 뛰어난 셀룰로이드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개량되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20세기 인류의 의식주와 유희, 미용 등 삶 전반에 자리 잡았다.

이제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20세기 플라스틱 혁명'의 잔해인 미세플라스틱의 보복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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