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약하면 호구” 꼰대 같은 피터슨에 젊은 남성들이 열광하는 까닭은

입력
2021.04.05 16:02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식인, 피터슨의 '질서 너머'
상반기 주식 책 아성 무너뜨리고 베스트셀러 진입

전 세계 젊은 남성들 사이에선 '진정한 지식인', 좌파와 페미니스트 진영에선 '사기꾼'으로 공격받는 양극단의 인물 조던 피터슨의 신간 '질서 너머'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쉴 새 없는 잔소리로 몰아세우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에 2030 남성들은 '롤모델'을 찾았다며 열광한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지난주(3월 4째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못 보던 책이 등장했다. 연초부터 상위권을 주름잡던 주식 재테크 서적과 아동 책, 소설을 무너뜨리고 인문 분야의 책이 확 치고 올라온 것. 출간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웅진지식하우스) 얘기다.

예약 판매만 1만 부. 출간 열흘 만에 3만 부를 찍었다. 교보문고 사이트엔 '인생 멘토', '청춘들의 아버지' 등 팬들의 댓글이 넘쳐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는 357만 명을 넘어섰고, 3년 전 출간된 ‘12가지 인생의 법칙’(메이븐)은 한국에서만 30만 부, 50여 개국에서 600만 부가 팔렸다. 도대체 피터슨이 누구길래,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종교심리학이 주전공인 조던 피터슨(59)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식인이다. 전 세계 젊은 남성들 사이에선 이미 신격화된 존재지만,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불평등은 불가피하다"는 도발적 주장으로 좌파 진영과 페미니스트로부터 '사기꾼'이란 공격을 받기도 한다.

조던 피터슨의 신간 '질서 너머'에 대해 구매 독자들이 달아놓은 댓글들.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피터슨을 떠받치는 건 2030 남성들이다. 5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질서 너머’의 구매자는 74.8%가 남성이었는데 그중 20대(33.4%), 30대(19.7%)가 절반이 넘는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선 여성들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출판계의 공식도 피터슨 앞에선 예외인 셈. “외국어나 취업 수험서 구매가 두드러지는 20대 남성 독자들이 인문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달성시킨 건 특이한 케이스”(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로 볼 수 있다.

책은 전형적인 영미권 자기계발서다. 사회 ‘구조’를 탓하기보다, 개인의 ‘수신’(修身)을 강조하는 피터슨은 ‘엄한 아버지’를 자처하며 독설과 잔소리로 독자들을 연신 다그친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12가지 인생의 법칙), ‘원치 않는 것을 안개속에 묻어두지 마라’,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질서 너머) 어찌 보면 참 별거 없는, 꼰대 같은 조언들로 ‘책임감을 가지는 강한 어른으로 살라’는 게 핵심 메시지다.

‘질서 너머’의 이민경 편집자는 “피터슨은 극단적으로 ‘선한 괴물이 돼야 한다’고도 강조하는데, ‘착하고 약한 존재는 미덕이 아니라 호구가 되는 것’이며, ‘선함은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을 발휘하지 않을 때나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특히 젊은 남성들이 매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 젊은 남성들 사이에선 '진정한 지식인', 좌파와 페미니스트 진영에선 '사기꾼'으로 공격받는 양극단의 인물 조던 피터슨의 신간 '질서 너머'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쉴 새 없는 잔소리로 몰아세우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에 2030 남성들은 '롤모델'을 찾았다며 열광한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페미니즘 열풍에서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는 젊은 남성들이 피터슨이 주장하는 ‘강한 남성상’에 호응하고 있다는 것. 뜬구름 잡는 행복론을 설파하기보다, 책임과 의무에 기반한 구체적 '행동 강령'으로, 삶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도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젊은 남성들을 끌어당기는 포인트란 설명이다.

진보 진영에서 강조해온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나 ‘정체성 정치’(여성혐오, 인종차별, 성적 지향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의제와 세력을 구성하는 정치)에 대한 일각에서의 반감과 피로감이 '피터슨 현상'에 투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피터슨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바로잡는 사회정의가 아닌 “부자연스럽고 억압적인 역차별”이자 “개인주의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서사”(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라고 비판하며, 우파 지지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피터슨에 열광하는 배경 중 하나로 “정치적 롤 모델의 부재”를 꼽았다. “보수정당은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진보정당 역시 ‘내로남불’의 문제로 더 이상 ‘힙’하게 다가오지 못한 상황에서 피터슨처럼 반(反) 정치적 자기계발 담론을 설파하는 이에게 답을 구하려 든다”는 것. 그는 “어디로 가야 하냐는 물음에 피터슨은 유일하게 답을 건네는 일종의 대리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