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남편을 ‘주인’이라 부른다? 옛날이야기

입력
2021.04.05 04:30
수정
2021.04.05 09:4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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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남편을 지칭하는 호칭은 다양하다. 이 중 '주인'이란 의미의 '슈진'이 아닌 '남편'이란 의미의 '옷토'로 부르는 경향이 최근 일반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에서 남편을 지칭하는 호칭은 다양하다. 이 중 '주인'이란 의미의 '슈진'이 아닌 '남편'이란 의미의 '옷토'로 부르는 경향이 최근 일반화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어 중 ‘남편’을 지칭하는 호칭에 ‘슈진(主人)’이 있다.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많이 사용됐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무의식 중 성차별을 조장한다” “대등해야 하는 부부 관계인데 상하관계를 느끼게 한다”는 등의 비판이 계속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제 배우자 남성을 부르는 호칭으로 ‘슈진’ 대신 ‘남편’을 뜻하는 ‘옷토(夫)’를 사용하는 경향이 일반화했다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연예인들도 방송에서 ‘옷토’란 표현을 사용하고, 직원들이 ‘슈진’이란 호칭 사용을 자제하도록 한 회사도 생겨났다. 도쿄 소재 보육사업을 영위하는 ‘플로렌스’란 회사는 4년 전부터 직원들이 남성 배우자를 ‘슈진’ 대신 ‘옷토’나 ‘파트너’라고 바꾸어 말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파트너’라는 표현은 사실혼이나 성소수자 직원도 사용하기 쉬워, 인재 다양성 확보에도 도움이 되는 인사 원칙”이라고 밝혔다.

‘슈진’이란 호칭 사용이 급속히 줄어들게 된 것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1999년 일본 문화청이 전국 기혼여성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배우자를 슈진이라 부른 비율은 75%에 달했다. 그러나 2017년 여론조사업체인 ‘인테리 서치’가 기혼여성 3,3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23%에 불과했다.

사실 ‘슈진’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니다. 일본어젠더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미즈모토 데루미 기타큐슈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옷토’라는 호칭이 정착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1336~1573)다. 반면 ‘슈진’이란 단어가 남편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전에 실린 것은 다이쇼 시대(1912~1926)로, 당시만 해도 ‘옷토’가 더 일반적인 표현이었다. 미즈모토 교수는 “전후 고도성장기에 남편이 회사에 다니고 아내가 전업 주부를 하는 가정 형태가 일반화하면서 ‘슈진’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게 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버블 붕괴 후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슈진’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남편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옷토’가 더 많이 쓰이게 된 지금, 고민의 초점은 ‘상대방의 남편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됐다. 일본에선 대화할 때 자신은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을 중요시 하는데, 자신의 남편은 ‘옷토’라 표현해도 상대방 남편을 가리킬 때는 ‘슈진’의 앞에 높임의 의미인 ‘고(ご)’를 붙인 ‘고슈진’을 쓰는 경우가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슈진’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고슈진’이란 표현을 쓰는 게 오히려 실례가 될 수도 있다. 미즈모토 교수는 ‘옷토상(さん)’을 권하면서 “’간호부’가 ‘간호사’로, ‘스튜어디스’가 ‘접객승무원’으로 바뀌었듯이 시대 변화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호칭이 바뀌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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