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 처벌로 해결되나… 토지가치 공유하는 새로운 체제 필요"

입력
2021.03.25 20:00
수정
2021.03.26 10:5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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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의 질문]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제안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서 한국일보 김희원 논설위원을 만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 22일 서울 중구 필동에서 한국일보 김희원 논설위원을 만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한 공분이 치솟고, 대통령·여당 지지는 바닥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 시대 부동산은 불평등의 원인이며 올인의 대상이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이 난맥상을 돌파할 새로운 체제를 주장한다. 22일 서울 중구 필동 연구소에서 남 소장을 만나 LH 사태의 해법을 물었을 때 그는 땅에서 나는 수익은 공공의 자산이라는 단순한 이념에서 출발해 투기 방지, 불평등 완화, 생산활동 자극이라는 열매를 맺을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가 핵심에 있다.


"사람 처벌보다 땅에서 얻는 부를 차단해야"

-LH 사태는 부동산 투기 과열과 공직자·공공기관 직원의 윤리 실종 현실을 드러냈다. 전·현직 직원들이 투기 기회를 ‘복지’처럼 여겨왔다는 데에 사람들이 분노한다.

“LH 직원들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비난하는 국민들도 그 자리에 있다면 같을 것이다. 흥분의 저변에 나는 돈 벌 기회가 없었다, 억울하다는 심정이 깔려있다. 본질을 보지 않고 사람만 비난해선 안 된다. 근본적으로 토지 용도를 택지로 전환했을 때 땅값이 상승해 부를 얻는 것을 차단·환수해야 한다. 물길이 굽은데 물을 비난해서 되나.”

-공직자 투기를 막기 위해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제안했는데.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지방의회 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신탁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탁위원회가 맡겨진 부동산을 처분하면 감정가액과 이자를 돌려준다. 공직을 떠날 때까지 처분이 안 돼도 부동산으로 돌려받지는 않는다. 감정가액이면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단 미래 상승 가치를 처분하는 점에서 재산권 제약은 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고위 공직자가 부동산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려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지 않나. 재산권 제약이 여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LH가 토지 수용할 때 시세대로 보상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공익을 위한 재산권 제약이다. 백지신탁제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신뢰도를 높이고 정의로운 정책이 집행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공익이 뚜렷하다. 자기 재산만 지킬 사람은 공직에 들이지 않는 정화효과도 있다. 지방의회에선 자기 재산가치를 올리려고 개발·정비계획을 내고 심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높이고, 묵묵히 지역을 위해 활동할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면 지방의회가 얼마나 좋아지겠나. 인사청문회에서 투기했느니 안 했느니 따지고 시달릴 이유도 없다. 지금 청와대가 다주택 처분 권고하는 것처럼 선의에 기대는 식은 안 된다. 강제할 법을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뭐가 문제였나.

“준비가 전혀 없었다. 집권 초기에 중요한 정책을 투사해야 하고, 촛불시민이 만들어 낸 정부라 지지도가 높았는데 부동산 해결 열망에 역행했다. 보유세 강화가 중요했는데 2017년 8·2 종합대책에서 빠졌다. 정부가 보유세 인상 생각이 없다는 판단이 들자 부동산 시장이 달아올랐다. 오히려 2017년 말 임대사업자 혜택을 강화했다. 참여정부의 종부세 트라우마 때문인지, 더 이상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해서인지 모르겠다. 보유세 강화는 기재부에 맡길 일이 아니라 청와대가 각을 잡고 각료를 끌어야 한다. 장기 과제다. 정부가 장기 근본 대책과 단기 시장조절 대책을 구분 안 하고 단기대책에만 집중한 게 패착이다. 집권 초에 부동산을 안정시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이전 수준으로 되돌렸다면 지지도가 올랐을 것이다. 삶이 나아지지 않는데 지지할 수 있나."

-일부 정치인은 “공공개발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공공개발은 꼭 필요하다. 공공개발을 하니까 환수된 개발이익을 주거복지에 쓸 수 있다. 민간 회사에 토지수용권까지 주고 직접 개발하면 그조차 민간 회사가 가져간다. 문제는 공익을 목적으로 수용한 땅을 민간 건설사에 매각해 시장에 나오는 순간 투기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가령 LH가 토지를 평당 10만 원에 수용해 50만 원 조성비용을 들여 400만 원에 팔면 민간 건설사는 평당 1,000만 원, 1,500만 원에 분양하는 구조다. 애초에 민간인 재산권을 제약하면서까지 사들인 땅을 왜 건설사에 팔아야 하나. 공공이 보유하면서 임대를 하면 투기를 막을 수 있다. 수용할 때 이미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문제는 프랑스처럼 개발계획이 발표되기 3년 전 가격으로 보상하는 식으로 토지소유자가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개발지역 인근 땅값도 오르게 되는데 그 이익은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 즉 토지를 수용할 때는 과거 땅값으로 보상하고, 수용된 개발지는 민간에 팔지 않고, 개발지 부근 땅값 상승분은 세금으로 잡는 것이다.”

진보당 전북도당이 2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앞에서 '한국투기주택공사'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투기 이익 환수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진보당 전북도당이 2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앞에서 '한국투기주택공사'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투기 이익 환수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국토보유세, 부담 아닌 혜택으로 투기 차단"

-토지는 공공의 자산이며 땅값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없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설계안을 내놓았다. 현행 재산세·종부세와 비교해 보자.

“현행 재산세·종부세를 재산세(건물분)·국토보유세로 바꾸자는 것이다. 종부세는 한계가 많다. 모든 부동산이 대상이 아니고, 주택·별도합산토지·종합합산토지 등등 용도별로 복잡하게 차등화돼 있다. 감면 제도도 너무 많다. 차등, 감면을 악용하는 이들이 많아 조세와 토지 사용이 왜곡된다. 어느 지역이든 어떤 용도든 토지 가치에 상응해 세금을 내면 된다. 국토보유세는 개인과 법인이 가진 모든 땅에 똑같이 과세하는 것이다.

보유세 강화는 투기를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부동산은 증권보다 기대수익률이 높다. 보유할 땐 임대소득을, 팔 때는 시세차익을 얻는다. 보유세를 높이면 소득규모가 주는 셈이니 투기수요자들이 매물을 내놓게 된다. 우리나라 땅값 총액이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4.5배 수준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2~3배다. 모든 생산활동이 땅 위에서 이뤄지는데 땅부자 말고는 좋을 사람이 없다. 비용을 높여 한국 경제를 무겁게 짓누른다. 땅값이 떨어지면 짓눌려 있던 생산의 용수철이 튀어오를 것이다."


-구체적 설계안을 보자. 토지+자유연구소가 경기연구원 용역을 받아 내놓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과 세제개편에 관한 연구’를 보면 0.5~4%의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비례형 6가지, 과표 1억 원 이하에 0.3%부터 100억 원 초과에 2~2.5%까지 단계별로 적용하는 누진형 3가지를 계산했다. 어떻게 작동하나.

“개인과 법인에 6단계로 0.3~2.0%를 적용하는 누진 3안이 현실적이다. 2020년치를 추산하면 총 50조 원의 국토보유세가 걷히고, 기존 재산세 토지분(9.3조)을 빼면 41조 원이 추가로 걷히는 세액이다. 이를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면 1인당 1년에 약 80만 원을 받는다. 내야 할 국토보유세와 받을 기본소득을 계산하면 전 가구의 95.7%가 순수혜 가구이고 4.3%가 순부담 가구가 되는데 누진단계를 조정해 90% 정도가 수혜를 받고 10% 정도가 부담을 지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보고서 계산으로는 부동산 시가 26억 원 정도가 수혜·부담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토지·건물을 합친 실효세율은 0.42%가 되는데 미국의 경우 1%가 넘고 법인은 더 높은(약 2%)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땅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이 많다는 뜻이고 운의 영역인 것인데 그 운을 중립화하는 것이다.”

-수십조 원을 부담할 땅부자들의 저항을 넘을 수 있을까. 개인도 개인이지만 법인의 부담이 늘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반대 여론이 극심할 것 같다.

“늘어날 세액 부담은 개인이 절반 남짓, 법인이 절반에 좀 못 미치는 정도다. 저항은 분명히 있다. 보유세 강화는 그래서 힘들다. 문재인 정부도 고가주택, 다주택 대상의 종부세만 강화했다. 재산이 조금만 있어도 세금 올리기를 싫어하고 재산이 없는 이들은 무관심하다. 후세대에 편하게 살 수 있다 해도 너무 먼 이야기다. 그러니까 기본소득과 연계한 것이다. 국민 90%가 혜택을 받는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부동산이 없거나 있어도 저가일수록 혜택이 많다. 기업도 혁신을 해야지 땅 투기로 돈을 벌면 되겠나."

-국토보유세가 도입되면 한국 경제와 불평등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핵심은 경제적 유인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다. 부담(세금)이 아니라 혜택(기본소득)을 통해 투기를 억제한다. 연 소득 5,000만 원인 사람이 빚으로 10억 원짜리 집을 사서 수혜액을 줄이느니 4억~5억 원짜리 집을 사고 기본소득을 유지하게끔 만든다. 지금의 부동산 과소비는 시세차익 때문인데 과소비 안 할수록 유리하고 시세차익도 없게 한다.

이는 혁명 같은 일이다. 1950년대에 농지개혁으로 할아버지가 소작농에서 자영농이 됐는데 ‘그 땅을 받았기에 너를 대학 보냈다’고 말씀하셨다. 국토보유세는 제2의 토지개혁과 같은 것이다. 쓸데없이 땅을 보유하는 일을 줄이고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 격차를 완화한다. 광복 직후 부동산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가 0.75였고, 토지개혁 직후 0.38~0.39이었는데 지금은 0.81로 심해졌다. 악화하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부동산에서 온다는 것을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 토지는 공공의 자산이다."

-국토보유세를 기본소득과 연계하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시작됐나.

“토지문제 연구자들은 조항세항이 고민이었다. 처음엔 국토보유세를 올려 생산효율을 높이는 대신 근로·생산활동에 매기는 소득세나 법인세를 깎아주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패키지로 묶기엔 일대일 조응이 잘 안 됐다. 그러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등 기본소득 연구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재원이 문제였다. 2012년 처음 세미나를 열어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7년 대선 경선 때 공약으로 받아들였다. 그때는 통계자료가 부실해 계산이 서툴렀는데 2018년부터 국토부가 좋은 통계를 내기 시작해 이번 보고서가 지난 1월에 나왔다.”

"기껏 수용한 땅 왜 민간 건설사에 넘기나"

-공급 대책으로 토지임대부 공공분양주택을 주장한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비정상적인 주택 값의 근본 원인은 토지 값에 있다. 토지를 공공이 소유해 임대료를 받고, 분양가는 건물 가치를 토대로 책정하면 값싸게 내집 마련이 가능하다. 지금은 집값 자체가 자가 보유의 장벽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공공분양주택은 다 토지임대부로 하겠다는 방침을 정해야 한다. 지금은 공공이 개발·분양을 다 하거나, 공공이 개발한 땅을 매각해 민간 회사가 분양하는 두 가지 방식인데 민간 건설사가 분양할 주택 부지도 임대를 하자는 것이다. 건설사는 순수하게 건설로 돈을 벌어야 한다. 비대한 건설업이 정리되고 건강해질 것이다. 지금은 건설사가 땅만 분양 받으면 로또다. 그러니 입찰 담합을 하고 조폭이 동원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07년 군포 부곡지구는 입지에 비해 비싼 토지임대료로 분양에 실패했고, 2011년 강남·서초 지구에선 최초 분양자는 이득을 보았으나 집값 안정 효과는 사라졌다. 토지임대료, 환매조건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강남·서초 지구는 조성 원가 기준으로 토지임대료를 산정했는데 그린벨트를 개발한 것이라 아주 싸게 책정됐다. 결과적으로 약 2억 원에 분양한 주택이 지금 12억 원을 호가한다. 토지임대료를 30여만 원 내는데 주변 시세가 월세 100만~120만 원에 이르니 월세 소득이 자본화되어서 가격에 반영된다. 그러니 토지임대료는 감정가액 기준으로 해야 한다. 시장가격대로 받기는 무리인 게 시간이 지나면 건물 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에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 감정가만 받아도 높은 개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전매제한 기간이 지나 집을 팔 때 분양가와 시장가격 간 차익이 있을 텐데 보유기간에 비례해 차익을 취하게 하면 적당할 것이다. 시세차익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 아예 분양에 실패할 수 있다. 다만 주택시장과 일반분양 가격도 안정돼야 한다. 국토보유세가 함께 시행돼야 한다.”

남기업 소장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가 제2의 토지개혁과 같은 혁명적인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배우한 기자

남기업 소장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가 제2의 토지개혁과 같은 혁명적인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배우한 기자


-국토보유세,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땅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지만 그 수익은 공공의 것이라는 토지가치공유제를 구현하는 제도다. 의미를 설명한다면.

“국토보유세는 세제가 아닌 체제, 레짐(Regime)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강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토대다. 투기가 만연한 시장경제가 좋은가.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대가를 가져야 하지 않나. 수도권에, 목 좋은 곳에 땅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하고 돈을 버는 게 정의로운가. 노태우 정부가 택지소유상한법·개발이익환수법·토지초과이득세법의 토지공개념 3법을 만들었는데 그보다 더 보편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국토보유세를 바탕에 깔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여기에 저렴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공급하면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90%가 기본소득을 받고 지역상권이 살아나는 국토보유세의 효능감을 한 번이라도 맛보면 역진이 불가능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되돌리지 못한다.”

-부동산 정책 전반의 변화이고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과 국민 설득 과정이 필요하겠다. 어떻게 공론화하는 게 좋을까.

“대선에서 공약으로 채택되고 공론화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부동산은 국가적 어젠다이고,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다뤄지기 어렵다. 다음 대선은 부동산 이슈가 중심에서 다뤄질 것으로 본다. 또한 집권 초기에 해야 한다. 지금은 집권 말기라 추진력이 없고 시간도 없다. 미리 필요한 통계를 다지고 준비해서 초반에 밀어붙여야 한다. 앱을 만들어서 우리 집 얼마, 세금 얼마, 기본소득 얼마를 확인할 수 있게 하면 관심을 촉발할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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