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된 의료기술은 원하는 때 죽지 못하는 21세기 슬픔을 만들었다

입력
2021.03.24 04:30
<25>죽음을 맞는 법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이제 집에서 자는 듯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순수한 운이 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입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추운 3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쓰러 을지로 모처에 갔다. 직원은 연명 의료를 거부할 몇몇 기준과 절차를 설명했고, 엄마는 문항마다 V 체크를 했다. 이 과정은 맨 밑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경우, 연명 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에 동의합니다’라는 란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건 죽는다는 것뿐이라거나, 인생은 태어났기 때문에 비극적이라거나, 모든 죽음은 다음 차례가 우리라고 말해준다는 식의 금언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엄마의 일생이 그 15분으로 요약되는 기분만이 모호하게 아쉬웠다. 나는 그날의 모든 세부를 낱낱이 기록하고 싶었다. 기억이 상세할수록 그 순간은 손상되지 않고 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밖에 나오니 날씨가 조금 풀려 있었다. 엄마는 “이제 죽어도 맘 편히 죽을 수 있겠네”라고 개운하게 말했다. 우리는 마치 다음 날 큰 시합을 앞두고 연대를 다지는 한 팀 같았다.

오래 전에 나는 엄마에게 웬만해선 꺼내지 못 할 이야기를 했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라는 게 있어. 나중에 병원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을 때 더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하는 건데 엄마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사람은 설사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더 살고 싶을지 모르는 거잖아.”

“나는 좋아!”

엄마는 오래 기다린 것처럼 오버랩으로 말했다. 다른 날보다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평소 우리에게 죽음이란 금기어가 아니었다. 엄마는 늘 너무 늦게 죽는 것보다 일찍 죽고 싶어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꼭 안았다. 그 순간에는 우리가 어떤 종말을 준비할까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가 있었다.

그 순간에는 우리가 어떤 종말을 준비할까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가 있었다.

지난 2년의 삶을 하루 단위로 끊어 보면, 나는 불안이 한 짐이나 되는 매분 매초를 살았다. 엄마의 한 호흡 한 호흡은 갈수록 소중했다. 동시에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감각은 비이성적으로 커졌다. 그건 인지적인 불안이기도 했다. 엄마는 크거나 작은 사고로 자주 다쳤다. 진료 과목도 갈수록 늘어났다. 엄마는 너무 시달려 했고, 나는 과잉 진료에 일조한다는 죄의식에 시달렸다. 내 마음에는 아주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어서 누가 찌르기만 해도 당장 물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다가올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셰익스피어는,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는다’고 말했다. 어떻게 엄마의 말을 미리 따라할 수 있을까?

“서류에 사인하는데 정말 무덤덤했어. 아무렇지도 않았어. 사람이 나고 죽는 건 이치야. 죽었는데 죽지 않은 게 돼서 자손들 그 고생시키고 그러는 거 생각도 하기 싫어.”

그 말에는 어떤 비애도 우수도 없었다.

사실 서류를 작성하러 가던 날은 생각이 많았다. 한 인간의 죽음에 관련된 증인이자 당사자가 되었다는 충격은 조금 더 복잡했다. 병원에서 몇 가지 기술적인 처치를 하면 더 살 수 있을 텐데 거기서 중단시키는 게 현명하다는 사회적 동의에 아들이 먼저 나선다는 게 확실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꾸만 내가 모친 살해의 안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불쑥 죽을 날을 통보하면 두 가지 히스테릭한 생리적 불협화가 생길 것이다.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거나, 그럴 리가 없고 뭔가 착오가 있다고 우기거나. 죽음을 말하는 사회적인 거리낌. 자기의 죽음을 수용하는 어려움. 그저 황당한 필멸의 현실. 도대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건 위험이 없는 형이상학의 시대와 맞지 않을뿐더러, 태어나는 날 계약상 동의도 없었다. 그래서 죽음의 사실성을 부정하고, 건망증과 중독으로 외면하며, 소멸의 고리로부터 발을 빼려 한다. 맹목의 종교와, 마법 같은 구원과, 새로운 시대 (몇몇은 다소 오랜 시대)의 궤변에 의지한 채 불멸의 약속으로 달려든다. 이때 의료보험 시스템의 가중된 비용과 통계가 가세한다. 진화된 의료 기술은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음을 연기 시키는 것 사이의 관련성을 그렇게 지웠다.

진화된 의료 기술은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음을 연기 시키는 것 사이의 관련성을 그렇게 지웠다.

의사들과 발명가들은 세탁기며 진공 청소기 같은 기구에서 파생된 병원 장치를 속속 만들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군대에서 발명된 나일론과 실리콘과 플라스틱은 새로운 의료 문명에 절묘하게 차용되었다. 항생제, 백신, 신장 투석, 심장세동제거기, 개심 수술, 심폐 소생술, 기도 유지, 호흡, 순환, 긴급 환자 수송 시스템, 심박 조절기… 생명연장의 꿈에 개입하기 위해 모인 발명품들은 모든 채널을 풀가동해 원하는 때 죽지 못하는 21세기의 슬픔을 만들었다. 죽음의 성격이 달라지자 영적인 고통은 기술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죽어가는 과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결국 어떻게 죽는지.

우리는 완벽한 죽음으로 죽을 수 없다. 그러나 적당한 죽음으로 죽을 순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8년 전, 친구 아버지는 87세였다. 그분은 어느 순간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 판막이 위험하게 굳었고 신체의 독립성을 잃었다. 친구는 하필 비가 세차게 내리는 아침에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의사는 말했다 수술을 하면 2년은 더 살 수 있지만, 하지 않으면 2년 안에 죽을 확률이 절반도 넘는다고. 뇌졸중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분의 고향 친구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술 받은 뒤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임종의 순간, 입이 튜브 같은 것으로 막혀 있어서 유언도 못 했기 때문에. 친구의 아버지는 워낙 꼿꼿하고 자존심 강한 분이셨는데 그 일로 아주 큰 대미지를 입었다. 평생의 모든 감각이 나의 것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삶의 타자가 되다니. 자기 결정권도 없이 생을 마무리하게 되다니. 수술의 위험성과 뒤에 벌어질 일을 숙고한 친구 아버지는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했다.

“의사 말이, 아버지는 심장만 아니면 건강한 편이라고 했어. 아버지 나이에 비하면, 이라고 전제하긴 했지만. 그런데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엉망인 마지막을 남겨준다는 걸 용서할 수 없었어. 의사도 그랬어. 자기 아버지였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나는 아버지한테 의사는 여든아홉 살까지 살 수 있다고 했는데요? 하고 말했더니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나는 아흔 다 되도록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친구 아버지가 당신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죽음과 정면으로 맞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일말의 회한이 남았다.

“어떤 땐 아버지가 너무 빨리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내가 그걸 할 수 있는 데까지 막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파. 그렇지만 아버지는 충분히 좋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해. 당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돌아가셨다는 게. 그리고 그게 조금은 위로가 돼.”

예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죽었다. 이제는 병원에서 죽는다. 의료 기술은 우리더러 영원히 살라고 압박한다. 심박 조율기로 환자의 심장을 뇌보다 오래 살게 만듦으로써 죽음을 임의로 조정한다는 환상을 밀어붙인다. 이제 집에서 자는 듯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순수한 운이 되었다. 그러나 의료 기구로 연장된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유지이다. 언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짓 명랑함과 길게 늘어뜨려진 시간의 무의미만이 최고의 치료이기 때문에. 결국 누구든 집중 치료실에서 죽을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 기구로 연장된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유지이다.

기록의 페이지를 휙휙 넘기면 마지막 출발의 우화가 보인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로부터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팔목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동안 그는 친구하고 가벼운 대화를 했다. 볼테르는 최후의 순간,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지를 묻는 교구 사제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나서 이렇게 내뱉었다.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데요, 아저씨. 그 사람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고 그냥 내가 평화롭게 죽게 좀 내버려 둬요.”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에게 말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나는 죽고 당신은 살 거야. 그렇지만 우리 중 누가 더 행복한 비전을 가졌는지는 신 말고는 누구도 모를 걸?” 그렇게 알려진 이야기도 아니고 몇몇은 출처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가 이 예시의 핵심이 아니다. 다만 죽음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 생각하면 두 가지 관점이 따를 것이다. 죽음을 말할 때의 사회적 어색함과, 기꺼이 죽음을 용납할 때 얻는 또 다른 생의 감각이.

‘리틀 빅 맨’이라는 영화에서 인디언 추장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죽기 참 좋은 날이야.”

오늘의 화두는 이 결론으로 맺으려 한다. 우리는 완벽한 죽음으로 죽을 수 없다. 그러나 적당한 죽음으로 죽을 순 있다.

에세이스트

이충걸의 필동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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