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세월호 막겠다" 혈세 퍼부은 여객선 부실 투성이

입력
2021.03.15 04:00
수정
2021.03.1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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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형태 카페리 건조비 절반 혈세 지원
238억 투입 선박 3개월 만에 운항 중단?
세월호처럼 복원성 문제 5개월간 수리
해수부는 펀드 운용 금융사에 책임 전가?
관리감독 등한시… 건조 5배 확대 논란

해양수산부가 238억 원을 보조해 지난해 7월 16일 제주 서귀포 성산포항과 전남 고흥 녹동항 노선에 취항했던 대형 카페리(노란색 원 표시)가 운항을 중단한 채 지난 2월 23일 선박을 만든 조선소 부두에 정박해 있다. 부산=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해양수산부가 238억 원을 보조해 지난해 7월 16일 제주 서귀포 성산포항과 전남 고흥 녹동항 노선에 취항했던 대형 카페리(노란색 원 표시)가 운항을 중단한 채 지난 2월 23일 선박을 만든 조선소 부두에 정박해 있다. 부산=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정부의 ‘연안 여객선 현대화 사업’ 일환으로 230여억원의 세금이 투입된 선박이 부실 투성이로 확인됐다. 허술한 사업 공모와 관리감독으로 선박 정비일수가 운항일수보다 많은가 하면, 특정 항로 운항을 약속하고 건조비를 받아낸 선사가 ‘돈이 되지 않는다’며 운항노선을 변경해 '먹튀' 논란도 일고 있다.

14일 해수부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정부 지원을 받아 건조된 ‘선라이즈제주호’는 제주 서귀포 성산포항~전남 고흥 녹동항 노선을 운항하다가 지난해 10월 부산의 한 조선소로 입항했다. 운항 시작 3개월 만의 일로, 파도나 강풍에 배가 기울어져도 원래 위치로 돌아오도록 하는 선박 복원성에 치명적 결함이 발견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선박은 5개월 수리 끝에 이달 초 운항을 재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선라이즈호는 취항 석 달 만에 ‘승객이 없다’는 이유로 운항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던 배”라며 “하지만 적정 수위만큼 배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아 세월호 참사 때처럼 복원성에 문제가 생겨 조선소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해수부와 관할 지방해양수산청(해수청)은 본보의 사실 확인 요청에 ‘사실’이라고 밝혔다. ‘승객이 없다’며 조선소로 들어가 5개월이나 정박했지만, 당국은 현장 한번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라이즈제주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라이즈제주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라이즈제주호는 세월호(6,825톤)보다 2배 이상 큰 1만 4,915톤의 카페리로, 승객 638명과 차량 170대를 동시에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다. 총 건조비 476억원 중에 50%인 238억원을 해수부가 지원했고, 은행 대출로 40%가 조달됐다. 선사는 선박 건조와 운용에 10% 비용만 부담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2016년 시작한 연안 여객선 현대화 1차 사업 대상 선박은 모두 7척으로 선라이즈제주호도 포함돼있다. 정부는 7척 제작비용 3,143억원 중 절반가량인 1,473억원을 각 선사에 15년간 펀딩 형식으로 무이자 지원했다. 현재 7척 중 4척이 취항했으며, 3척은 건조 중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5년 2차 사업을 통해 35척의 여객선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만든 선박이 취항 석 달 만에 수리 입고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여객선 현대화 사업 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조선소와 해운회사가 밀집한 부산과 경남, 전남지역에는 선박 브로커들이 ‘나랏돈으로 수백억 원짜리 배를 만들 수 있다’며 휘젓고 다녔다. 대형 여객선사의 한 대표는 “선박 브로커들이 찾아와 ‘건조가액을 부풀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배를 건질 수 있는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며 “해수부가 펀드 선박 대상자를 공개 모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 선사가 뽑혔다는 내정설까지 돌았다”고 말했다.

해수부가 '연안 여객선 안전을 확보하겠다'며 선박 7척 건조비 절반을 지원했지만, 대상자 선정부터 선박 관리감독까지 운용사인 세계로선박금융㈜에 모두 맡긴 것도 논란거리다. 세금으로 지원하면서도 ‘펀드’라는 이유로 운용사인 민간 금융회사에 선사 선정부터 관리감독까지 맡기면서 잡음이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한 해상운송이 최우선이어야 하지만, 펀드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투자자들 이익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이 때문에 막대한 돈을 댄 정부도 운영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허술한 관리를 틈타 선라이즈제주호 선사는 세금으로 만든 선박을 ‘돈이 더 되는 노선’에 투입하려다가 지역 주민들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포항해수청은 지난 1월 4일 포항 영일만항과 울릉 사동항을 오가는 노선에 8,000톤급 이상의 카페리 운영 사업자 공모에 나섰다. 그러나 포항해수청은 선정위원회를 두 차례나 미룬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귀포~고흥 노선에 뛰고 있는 선라이즈호 H선사가 해당 선박을 포항~울릉 노선으로 옮겨서 운항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업계는 서귀포~고흥 노선보다 포항~울릉 노선 수익이 연 50억원 이상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포항해수청 관계자는 “선라이즈호는 서귀포~고흥 노선 운항을 조건으로 펀딩을 받은 선박”이라며 “노선을 옮겨 운항할 수 없는 선박”이라고 말했다.

해수청은 H선사의 신청을 반려했다. 해수청 관계자는 “여객선 펀드로 건조된 선박은 펀드 계약에 따라 항로 변경 전에 선박에 자금을 댄 대주단(채권단)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H선사는 법원에 반려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달 초 H선사의 손을 들어줬다. H선사는 “현재 운항 중인 서귀포~고흥 항로의 승객이 급감해 안정적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펀드 자금을 갚아야 하는데 기존 노선을 계속 운항하면 돈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 남울릉 선거구 무소속 김병욱 국회의원과 울릉지역 남진복 경북도의원, 정성환 울진군의원을 비롯해 울릉지역 주민들이 지난 10일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울릉 카페리 사업자 선정을 촉구하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 남울릉 선거구 무소속 김병욱 국회의원과 울릉지역 남진복 경북도의원, 정성환 울진군의원을 비롯해 울릉지역 주민들이 지난 10일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울릉 카페리 사업자 선정을 촉구하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법원 결정으로 문제의 선박을 받게 된 포항·울릉지역 주민들과 선박을 뺏기게 된 서귀포시는 모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해수부 펀드로 만들어 최소 15년은 의무적으로 다닌다고 해서 32억원을 들여 화물부두였던 성산포항을 여객부두로 용도변경하고 접안시설까지 따로 만들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운항 중단도 모자라 선박을 뺀다는 소식에 서귀포 주민 모두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데도 해수부는 지난해 12월 14일 ‘제2차 연안 여객선 현대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2차 현대화 계획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추진된다. 7척이 건조되는 1차 사업 때보다 5배나 많은 35척을 건조한다. 또 펀드 투자자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신생 공기업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참여한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국내 해운회사 금융지원을 위해 2018년 1월 설립된 공기업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중·고 동기인 황호선씨가 초대 사장에 선임돼 출범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국내 한 여객선사 대표는 "세월호 참사 재발 방지 명분으로 새 선박을 많이 만들어 여객선 평균 연한을 낮추겠다는 접근부터 틀렸다"며 "2차 현대화 사업을 중단하고 1차 선박들의 안전 점검과 관리 감독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안 여객선 현대화 펀드 투자 구조. 출처 해양수산부

연안 여객선 현대화 펀드 투자 구조. 출처 해양수산부




부산·제주·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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