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위 Z세대가 중심...K팝 팬들 연대하듯 지지해달라"

입력
2021.03.11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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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응시] 미얀마 민주화운동가 소 모 뚜씨 인터뷰

소 모 뚜씨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한 의원들이 군부에 맞서 연방의회대표위원회를 조직하고 문민정부를 구성했다"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 정부를 정식 외교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인천=홍인기 기자

소 모 뚜씨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한 의원들이 군부에 맞서 연방의회대표위원회를 조직하고 문민정부를 구성했다"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 정부를 정식 외교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인천=홍인기 기자

지난해 총선에서 참패한 미얀마 군부가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지 40일이 지났다.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다시 총선을 치러 민주 세력에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겠다는 속셈이지만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번 주까지 포함해 한 달여 사이 두 차례 전국 총파업에는 최소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 멀리 1980년 광주, 가까이는 4년여 전 한국의 촛불시위를 연상케 하는 이 대규모 시위를 미얀마 사람들은 '시민 불복종'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를 막기 위해 나선 군경이 진압 작전에서 실탄까지 사용하면서 시위 사망자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100명 가깝게 나왔다. 군부는 해산 목적이라고 하지만 SNS 등을 통해 전해지는 시위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거의 조준 사격에 가깝다. 9일 북부 미치나 시위 현장에서는 총을 쏘지 말라고 몸으로 경찰을 막아선 수녀가 화제였는데 경찰들은 장소를 옮겨 시위대를 사살했다. "죽을 때까지 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미얀마 경찰의 증언도 나왔다.

인도차이나반도 최대 면적의 자원 부국 미얀마는 다시 암울했던 군부 통치로 되돌아갈 것인가. 20여 년 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소 모 뚜씨를 11일 그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인천 부평의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에서 만나 시위 소식과 향후 미얀마 상황에 대해 들었다.

-미얀마 현지 상황을 어떤 경로로 접하고 있나.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한국 내 버마행동한국(Burma Action Korea) 활동을 하다 귀국한 사람들도 이번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데 이들과 연락한다. 오랫동안 정보 통제사회에서 살아와 미얀마 사람들은 SNS를 통한 정보 검색이나 공유가 활발하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도 페이스북 계정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 여기에 올라오는 소식, 정보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민주화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희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

“시위 중 사망자 소식 등 외신을 통해 알려진 것 외에도 이를테면 백주대낮에 아빠가 배 타러 가서 아이와 엄마만 있는 집에 군경이 들이닥쳐 막무가내로 잡아가고, 심지어 약탈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며칠 전 북부 카친주 미치나에서는 공사 중인 건물 옥상에서 저격수가 조준 사격해 교사 등 2명이 죽고 5명이 크게 다쳤다. 무력 대응하는 집단에는 경찰복을 입은 군인도 많다고 한다.”

-시민만이 아니라 공무원, 교사, 심지어 일부 경찰도 시위대에 합류했다는데 저항하는 시민의 열기는 어느 정도이고 어떤 방식으로 싸우고 있나.

“지난달 ‘2222 항쟁’ 당시 총파업 물결에 참여한 규모가 전국에 걸쳐 3,000만 명에 이른다는 추산이 있다. 걷지 못하는 사람 빼고는 거의 모든 미얀마인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얘기다. 1988년 민주화 투쟁도 참여 열기가 대단했다. 일부 경찰, 심지어 군인까지 시민 편에 섰다. 그러나 그때는 군인이 시위대를 막으면 뚫고 나가자는 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희생이 컸다.

지금 시위는 국제사회에 미얀마 시민이 간절히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것을 알리는 게 큰 목적이다. 시위대를 가로막은 군인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와 평화는 그들이 가진 것이 아니므로 부딪힐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막으면 피해서 흩어지고 그랬다 다시 모이는 식으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는 1988년,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으나 군부의 탄압으로 무산됐다.

“한때 잘살았던 미얀마가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동남아 최빈국이 됐다. 사회주의 독재 아래서 봉쇄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피폐한 경제와 군인이 지배하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짓눌렸던 시민들이 1988년 엉터리 화폐개혁 등에 불만을 터뜨리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SNS로 소통하던 시절도 아니어서 군경이 닥치는 대로 시위대를 쏴 죽였다. 도심 사거리의 다리 위에 올라가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는 식이었다.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지만 사망자, 부상자가 바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2007년 항쟁은 한 지역에서 승려를 기둥에다 묶고 때리고 땡볕에 방치한 사건이 일어나 이에 항의하기 위해 승려들이 평화 시위에 나선 것으로 시작됐다. 승려들은 독재 타도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평화롭게 살자’ ‘사랑하자’고 했는데 당시 유가 인상 등으로 힘들었던 시민들이 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양곤, 만달레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된 것이다.”

미얀마 경찰이 6일 최대 도시 양곤 변두리에서 시민을 곤봉으로 때리려 하고 있다. 양곤=AP연합뉴스

미얀마 경찰이 6일 최대 도시 양곤 변두리에서 시민을 곤봉으로 때리려 하고 있다. 양곤=AP연합뉴스

-군부의 분열이나 시위대 참여 조짐은 없나.

“군부는 동요가 없다. 이미 60년간 정권을 차지하며 다져놓은 이권이 어마어마한 조직이다. 100년, 200년 먹고살 재산을 가졌는데 서민 편에 서겠나. 양심적인 군인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5년간 문민정부 아래서 정부 편을 들 군인들이 나올 만도 했는데 없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이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를 척결했던 것 같은 군부 약화의 토대를 만들지 못했다.”

-시민의 저항이 성공할 수 있을까.

“미얀마인들은 더 이상 영웅을 기다리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도와주길 바라지만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리자는 마음이 강하다. 지난 5년간 민주주의와 자유의 경험이 소중했고, 군사 독재로 되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젊은이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른바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가 그들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를 이끌고, 그보다 나이 많은 XㆍY세대가 지원하는 연합 시위 형태가 많다.”

-군부는 쿠데타 이유로 지난해 총선 부정을 내세우고 있다.

“군부는 2015년 총선 직후부터 쿠데타 조짐이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헌법에 따라 할당된 25% 의석으로 문민정부를 끊임없이 견제해왔다. 군인 출신인 내무부 장관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가까워지자 장관에서 쫓아내는 식이니 문민 통치가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군부의 영향력을 줄여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었다. 수치 고문이 로힝야 문제에서 어쩔 수 없이 군부 편을 들어준 것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다. 선거 부정은 지난해 총선에서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믿었으나 실패하자 군부가 핑계로 삼은 것일 뿐이다.”

-선거 부정이 사실무근이라는 말인가.

“유권자 명부와 실제 투표자 불일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는 미얀마의 인구조사가 정확하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해 평가할 문제다. 2015년 총선에서는 군 출신인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이 유권자 명부가 20~30%밖에 정확하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지난해 선거는 그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에서 치러졌다. 예를 들어 군인은 지금까지 부대에서 투표를 했는데 더 투명한 선거를 위해 주둔 지역 일반 투표소에서 하도록 바뀌었다. 군부의 유권자 명부 오류도 주장만 넘쳐나지 물증이 별로 없다. 반대로 군부가 사주한 투표소 내 부정행위 사례가 수두룩하다.”

-1년 비상사태를 선포한 군부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군부는 쿠데타 한 달 만에 이 상황이 1년이나 2년 이어질 수 있다고 벌써 말을 바꾸고 있다. 군부 통치는 반란이기 때문에 기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시민 불족종 운동을 이어갈 것이다.”

-미얀마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높지만 적극 개입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어떤 노력이 도움이 될 수 있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날은 지난해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 개회일이었다. 그후 집권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원 380명이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구성했고 15명의 대표자 중심으로 군부에 저항하는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면 잡아가는 법을 폐지했고, 시위 참여 공무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내는 등 입법활동을 하고 있다. 외교장관 등 9개 장관 대행도 임명했다. CRPH를 미얀마의 합법적 정부로 인정해 주도록 요청하는 서한을 각국 정부에 보내고 있다. 군사정권 관계자를 추방하고 제재해 달라는 메시지도 보낸다. 국제사회가 이에 적극 호응해주길 바란다.”

-임시정부는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수도 있지 않나.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이 우선 든든한 동력이지만 국민 편에 서게 해 달라는 뜻을 밝힌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협력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10만 명 정도인 이들을 CRPH의 병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자칫 내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군부독재를 뿌리 뽑자, 군부의 권력을 보장하는 부당한 헌법을 폐지하고 연방 체제에 바탕한 새 헌법을 만들자는 움직임을 소수 민족도 반기고 있다. 무력 쿠데타가 성공한다는 또 하나의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국제사회도 좌시해서는 안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국, 러시아의 거부로 제대로 된 비난 성명 하나도 채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미얀마 군부를 지원한 나라다. 천연가스, 티크, 보석 등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방해한다면 중국 또한 미얀마 시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미얀마에서 사업을 벌이는 중국의 가스전을 폭파하겠다는 등의 경고도 나오고 있다.”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가 군부 쿠데타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경질당했다. 이런 움직임이 더 있는가. 한국 주재 미얀마 대사관은 어떤 태도인가.

“미국, 영국 주재 대사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 주한 대사는 수치 고문이 아들처럼 아끼는 인사다. 대사는 쿠데타 이후 마음으로는 시민 편이라고 하면서도 30년을 기다려 이 자리에 왔다, 칼 쥔 사람이 주인 아니냐며 민주화 요구에 동참하지 않는다. 2일 대사관 앞에서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까지 열었는데 결국 호응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시위 탄압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아직 별다른 외교적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미얀마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이 정세 변화에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이다.

“미얀마 시민의 절실함을 알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면서도 상황을 봐 군부독재와도 손잡을 수 있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나. 민주주의를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미얀마 사태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진정한 의지를 살피는 시험대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군부가 권력을 모두 장악한 듯 보이지만 문민정부 체제가 구성된 것은 물론이고 군대까지 갖추려 하고 있다. 대다수 미얀마 국민이 이 방향을 원하고, 새 헌법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이런 흐름을 이어가 미얀마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도와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희생을 치른 한국인에게는 미얀마 상황이 먼 남의 나라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1980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광주의 시민단체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연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들이 미얀마 민주화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더 많이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면 좋겠다. K팝 팬들이 연대하듯 미얀마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집단적인 의사 표시가 활발해지고 또 확산됐으면 한다. SNS의 해시태그 운동 같은 것도 힘이 된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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