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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고심하는 공연계

입력
2021.03.12 04:30
21면

편집자주

이단비 드라마투르그(연출가와 공연 작품의 해석 및 각색을 하는 사람)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뮤지컬과 연극 등 기획부터 대본, 통번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무경험을 토대로 무대 안팎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018년 공연된 'I, Question'의 한 장면. 우란문화재단 제공

2018년 공연된 'I, Question'의 한 장면. 우란문화재단 제공


예술에서 온전한 창작은 과연 존재하는가.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이란 저작물에 대해 저작자가 가지는 권리'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이 독창적으로 표현된 것을 저작물로 볼 때, 그 경계를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가.

뮤지컬 '렌트'는 초연 이후 관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렌트'의 각본과 가사, 작곡을 맡았던 조너선 라슨의 안타까운 죽음도 '렌트'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원작자 라슨은 약 7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의 성공을 직접 보지 못했다. '렌트'가 1996년 오프브로드웨이의 한 공연장에서 개막하기 전날 라슨이 대동맥 박리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슨의 사망 뒤로 예기치 못한 법정 분쟁이 생겼다. 뉴욕 시어터 워크숍의 주관으로 대본 작업에 투입됐던 드라마투르그 린 톰슨이 이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톰슨은 자신이 라슨과 함께 이 뮤지컬의 새로운 버전의 상당 부분을 '공동 집필'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크레디트를 요구했다.

끝내 톰슨은 '렌트'의 공저자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은 예술창작 행위에서 명확한 역할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앞서 '렌트'를 최초로 구상한 이는 빌리 아론슨이라는 극작가였다. 그에 앞서 '렌트'의 모태는 1896년에 초연한 푸치니의 대표작인 오페라 '라보엠'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형식의 공연에서는 그나마 개별 기여도를 가려내기 쉽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보편화된 공동 창작 작업에서 참여자들의 역할은 더 복합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 종전에는 연출, 극작가, 배우의 구분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배우가 아이디어를 내고 텍스트를 쓰며 실연까지 한다. 결과물에 대한 크레디트를 분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와 콘셉트는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작되는가. 그리고 한 공연 안에서 개별 창작자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2020년 6월 삼일로 창고 극장 스튜디오에서 '새-시대비평 클럽'의 첫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배우 나경민은 지난 10여년에 걸친 공동 창작에서 배우의 입장을 공론화한 적이 있다. 그는 여전히 공동창작의 결과물이 연출자나 대표, 극단으로 수렴되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이성규 변호사는 "저작권이란 하나의 저작물이 사용될 경우, 내가 관여했음을 표시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했다. 즉, 크레디트는 창작자의 권리인 것이다.

창작자의 크레디트에 대한 새로운 기준 확립이 필요한 이유는 공연의 창작 방식이 재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환경 때문이다. 이는 미래의 공연 방식이 어떤 패러다임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동반한다. 한 예로, 2018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첫 발표를 가졌던 'I, Question(아이 퀘스천)'은 사람과 인공지능이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도였다. 인공지능은 사진에 대한 예술적 판단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프로그래밍됐다. 관객은 핸드폰에 소장하고 있던 사진을 웹사이트에 한 장씩 올렸고, 이를 통해 'I, Question'이라는 인공지능은 자기만의 예술적인 기준과 시각으로 사람들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나아가 인간의 창작 행위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 쓰기 과정이 이어지면서, 인간과 기계가 영감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가 형성됐다. 인공지능과 관객 그리고 시인의 유기적 창작 행위를 통한 공진화가 시도된 것이다.

감정의 영역으로 생각되던 공연예술에, 기술 과학이 더 긴밀하게 그 영역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렇게 기술과 인간의 만남이 긴밀해질수록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예술에서 새롭게 예술과 창작에 대한 질문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미래에는 크레디트를 어떻게 부여하게 될 것인가. 인공지능 개발자에게 크레디트가 부여되는 것인지, 자체적인 개입 혹은 판단이 커지게 될 인공지능 자체에 예술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 것인지. 급격하게 바뀌어 가는 이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창작의 방식도 변화되고 있다. 미래의 공연 예술에서 크레디트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들에 대한 변화를 반영하며 이는 우리 삶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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