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룰’이 만든 총수일가 표대결… 한국타이어·금호석화 주총서 현실로

입력
2021.03.01 18:33
수정
2021.03.01 19: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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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앤컴퍼니 조현범(왼쪽) 사장과 조현식 부회장. 한국앤컴퍼니 제공

한국앤컴퍼니 조현범(왼쪽) 사장과 조현식 부회장. 한국앤컴퍼니 제공

대주주의 횡포를 막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도입된 일명 ‘3%룰’이 입법 취지와 달리 총수 일가의 경영권 다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지분이 적은 대주주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반격을 꾀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우려했던 ‘악용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 기업들, '3% 룰'에 긴장

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기업 규제 3법’ 중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3% 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다.

3% 룰은 상장사의 감사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행사하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영향력을 강화해 기업경영을 투명화시키기 위해 도입했다.

또 지금까지는 기업이 감사위원을 뽑을 때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들 중에서 감사위원을 다시 선출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무조건 이사와 별도로 분리 선출해야 한다.

이에 기업 입장에서는 대주주가 원하지 않는 감사위원이 선임될 가능성이 커졌다. 감사위원은 대주주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리여서 만약 대주주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쪽의 인사가 선임된다면 회사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3% 룰에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


금호석화·한국앤컴퍼니, 표 대결 예고

'조카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에서 가장 먼저 3% 룰에 따른 표 대결이 예고됐다.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상무 측이 지난달 본인의 사내이사 추천과 사외이사·감사위원 추천, 배당 확대 등이 담긴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 지분 10.00%을 가진 최대주주다. 그러나 박 회장(6.69%)과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전무(7.17%), 딸 박주형 상무(0.98%)의 지분을 합치면 14.84%로 박 상무보다 4.84%포인트 높다.

하지만 감사위원 선임 단계부터 박 회장과 박 전무, 박 상무의 의결권이 각각 3%로 제한되다 보니 박 상무가 우호지분을 확보한다면 판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도 이달 주총에서 표대결을 벌인다. 조양래 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자신이 보유한 지분 23.59%를 넘기며 후계자로 지목한 것을 두고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이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제안하는 주주서한을 공개해 이달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현재 한국앤컴퍼니는 조현범 사장이 42.90%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조현식 부회장 19.32%, 차녀 조희원씨 10.82%, 국민연금 5.21%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지난해 상법 개정 당시 우려했던 ‘3%룰의 경영권 분쟁 악용’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3%룰,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다툼에 악용되면 경영 혼란이 가중돼 일반주주까지 불안해할 것”이라며 “향후 다른 기업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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