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만에 '코로나 영웅'에서 '성추행범'으로 전락한 美 뉴욕주지사

입력
2021.03.01 15:20
수정
2021.03.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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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보좌관·비서관 잇따라 성폭력 피해 폭로
쿠오모 독립조사 제안했지만 "정치 생명 끝"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 주지사가 지난해 5월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 주지사가 지난해 5월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웅으로 추앙받던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州) 주지사의 추락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와 일했던 보좌관의 성희롱 피해 사실이 공개된 지 며칠 만에 전 비서관의 추가 폭로가 줄줄이 터지면서 ‘성폭력’ 가해자로 단단히 낙인이 찍혔다. 소속 정당인 민주당 안에서도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 등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쿠오모 주지사의 전 비서관 샬럿 베렛은 그와 단둘이 사무실에 있을 때 ‘성관계를 맺는 남성의 나이가 중요하느냐’ 등의 질문을 받았다. 베렛은 이런 질문이 성관계를 갖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쿠오모의 전 보좌관 린지 보일런도 온라인매체 기고를 통해 주지사가 팔 다리를 만지고 강제로 키스를 했으며 행사 참석 뒤 돌아오는 항공기 안에서 ‘스트립 포커’(옷을 벗기는 포커게임)를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구체적인 피해 증언에 쿠오모 주지사는 발언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내 지위를 고려했을 때 일부 발언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잠자리를 제안한 적은 없다”면서 의혹의 내용은 부인했다.

그는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독립조사위원회 설치도 제안했다. 그러나 자신과 친분이 있는 연방판사 출신 바버라 존스 변호사를 조사위원으로 지명해 오히려 역풍을 불렀다. 주의회는 리타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이 직접 나서서야 한다고 요구했고, 제임스 법무장관도 외부 법률가로 구성된 조사위 구성을 역제안했다. 압박이 커지자 결국 쿠오모 주지사는 “독립적인 외부 법률가를 선임해 혐의를 검토해 달라”고 꼬리를 내렸다.

그에게 더 이상 우군은 없어 보인다. 주의회뿐 아니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연방의회 민주당 동료들까지 철저한 조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쿠오모의 혐의는 매우 심각하고 우려스럽다”며 “법무장관실이 주도하는 조사위에서 투명하고 빈틈없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까지 나서 “조 바이든 대통령 또한 독립 조사위를 지지한다”고 거들었다. “쿠오모는 괴물(알렉산드라 비아지 상원의원)” 등의 격한 반응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남은 선택지는 물러나느냐 버티느냐, 양자택일뿐이다. 쿠오모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사태 당시 발 빠른 대처로 호평 받으며 대선주자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관내 요양시설 내 코로나19 사망 수를 일부러 낮춰 발표한 의혹으로 수사에 직면한 데 이어 성폭력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실상 정치 수명이 다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AP통신은 “민주당 안에서 누구도 쿠오모 편을 들지 않는다. 그는 점점 더 고립되고 지지기반은 무너지고 있다”고 짚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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