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위협·곡예… 그 많던 3·1절 폭주족은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1.03.01 17:00
수정
2021.03.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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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마다 '센 사람들' 모여 겁 없는 질주?
2010년 이후 청소년 폭주족 순식간 급감
오토바이 배달원 늘며 "더 이상 안 멋있어"
페인트 총 사용… 경찰 창의적 검거도 한몫
"청소년 일탈 없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2009년 광복절 새벽 오토바이 폭주를 즐기는 세 명의 청소년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년 광복절 새벽 오토바이 폭주를 즐기는 세 명의 청소년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토바이가 300대까지 있었죠. 뚝섬 150대, 여의도 150대. 저희도 이벤트는 있어야 하니까요."

한때 3·1절과 광복절 등 국경일마다 오토바이 폭주에 나섰던 청소년들은 경찰의 큰 골칫거리였다. 귀청을 때리는 굉음과 시민들을 위협하는 질주, 그리고 단속 경찰까지 조롱하는 막가파식 행동은 단속 경찰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2010년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하나둘 도로 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폭주족 특별단속 지침을 내리지 않았고, 지난해부터는 서울경찰청까지 단속의 손을 놓았다. 그 많던 폭주족은 왜 어디로 사라진 걸까.

폭주는 든든했고 오토바이는 멋있었다

2000년대 초반 오토바이를 타던 청소년 대부분은 폭주족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래 문화가 이들을 탈선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혼자 오토바이를 타면 처벌이나 단속의 두려움을 느끼지만, 여럿이 참여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경일마다 폭주에 참여했던 한모(32)씨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든든했다"고 회상했다.

오토바이 폭주는 유독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경일에 벌어졌지만, 그날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평소 주말에는 동네에서 모여 폭주를 즐겼다면 국경일에는 '폭주 좀 뛴다'하는 친구들이 한데 모여 '전국구 원정 이벤트'를 벌인다는 의미 정도였다. 주말 폭주 참여 인원은 70~80명인데 비해, 국경일 폭주 인원은 200~300명까지 늘어나 규모의 차이가 있었다.

폭주족들이 공유하는 에피소드는 '추모 폭주' '자진 신고' 등이다. 당시 폭주족들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망한 폭주족 일원을 위해 추모 폭주를 열었을 때를 기억했다. 추모 폭주에 참여했던 박모씨는 "친구가 세상을 떠나 뭐라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추모 폭주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폭주족들이 경찰에 자진 신고를 하는 일도 있었다. 박씨는 "폭주하는데 경찰이 따라오지 않으면 재미없으니 우리가 스스로 신고도 했었다"고 말했다.

'센 사람' 타던 오토바이 지금은 '배달원'

이렇게 세를 떨치던 폭주족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오토바이가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더는 멋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폭주족 대부분은 만 18세가 되면 오토바이 핸들을 놓았다. 법적으로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해 자동차로 갈아타는 것이다. 박씨는 "19세 생일이 되면 자동차 면허 따고 오토바이를 그만두는 게 관행이었다"며 "당시 폭주족은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2007년 폭주를 즐기는 청소년들이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다. 박모(30)씨 제공

2007년 폭주를 즐기는 청소년들이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다. 박모(30)씨 제공

성인이 된 이들의 빈자리는 오토바이를 시작하는 청소년으로 다시 채워졌지만, 2010년 이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토바이는 곧 배달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새로운 청소년이 유입되지 않은 것이다. '배달의 민족' 등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활성화되면서 중식 위주로 운행되던 오토바이 배달원은 전 메뉴로 확장됐다. 오토바이가 폭주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가 끝났고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폭주족 문화도 끝이 났다. 박씨는 "나 때는 오토바이 타면 '강한 사람' '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배달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일탈, 마약·성범죄로 옮겨갔을 것"

경찰이 창의적 단속 방안을 내놓은 것도 폭주족이 사라지는데 영향을 미쳤다. 경찰은 폭주 중인 청소년에 페인트 총을 쏜 후, 폭주가 끝나고 페인트가 묻은 채 귀가하는 청소년을 손쉽게 검거했다. 오토바이 운전 중인 폭주족을 추격해 검거하는 것보다 덜 위험하고, 폭주족 구분도 쉬워 효과적이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폭주족이 사라진 것일 뿐, 청소년 일탈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청소년 일탈은 새롭거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쪽으로 진화하는데, 오토바이 폭주는 더는 멋있는 일탈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일탈 가능성이 낮아진 게 아니라 오토바이 폭주가 일탈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흥미를 갖는 일탈 대상이 마약과 성범죄 등 다른 쪽으로 옮겨갔을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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