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절단하는데 평온하던 치매노인... 모든 것은 소멸한다

입력
2021.03.02 22:00
수정
2021.03.03 12:22
1면

<1>?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연재를 시작하며...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극적으로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끝내 살려내지 못한 환자일 수도 있습니다. 가슴 시린 사연을 가진 환자도 있고, 반대로 의사 자신에게 직업적 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준 환자도 있을 것입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엔 지금 이 순간에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용기와 절망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의사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연재를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살고 아프고 죽어가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연재는 의사들의 이야기이지만,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게재됩니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구급대원 요양보호사 등 환자를 접하는 다른 의료종사자들의 사연도 담을 예정입니다.
환자에 대한 각별한 기억, 환자와의 특별한 교감을 갖고 계신 의료인들은 원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선정된 원고는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뉴스페이지에 게재됩니다. 자세한 문의와 원고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첫해 인턴으로 근무한다. 1년간 4주씩 13개 과를 순환하는 일정이다. 인턴은 각과에서 의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을 수행하며 진로를 탐색한다.

나는 당시 정형외과 인턴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의 수술방은 언제나 분주했다. 하루에도 100개 가까운 정규 수술이 진행되었다. 특히 정형외과는 많은 수술을 담당했다. 나는 인턴으로 수술방에서 가장 기초적인 일을 담당했다. 환자를 이송해서 수술방에 넣고, 소독하는 동안 발을 들고 있거나 환자 몸에서 나오는 피를 닦거나 상처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많은 수술로 금방 지나갔다. 환자들은 대기했다가 수술방에 들어오자마자 마취되어 곧 잠들었다. 의사들은 마취과에서 사인을 보내자마자 팔이나 다리를 들어 소독하고 철심을 박아 모양을 맞추거나 인공 관절을 넣었다. 바쁜 수술방의 일과가 끝나면 병동의 잡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는 날들이었다.

그날은 정규 수술이 조금 일찍 끝날 예정이었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 그날따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마지막은 척추마취로 진행되는 다리 절단 수술이었다. 다른 수술에 비해 간단한 수술이었다. 보통의 정형외과 수술은 사지의 기능을 보존하거나 대체해야 하지만, 절단술은 정해진 부위를 잘라내면 끝났다. 출혈의 위험도 적었고 기능을 잃어버릴 우려도 없었다. 나는 홀가분하게 고령의 할아버지가 누운 침대를 밀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그의 오른발에 칭칭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나는 환자가 척추마취를 받는 동안 대기했다. 환자는 치매가 심해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다. 차트에는 몇 년 정도 고령으로 와병 생활을 했고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지 오래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마취과는 환자의 마른 몸을 모로 눕혀 척추를 찔러 마취를 했다. 붕대를 풀자 오래 조절되지 않은 당뇨로 다 썩어버린 오른발이 드러났다. 저 다리를 절단해서 더 이상의 괴사와 전신의 염증을 막는 수술이었다.

하지의 감각이 사라진 환자는 의식이 명료했지만 수술방에 누워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되지 않는 것 같았다. 곧 의사가 자신의 발을 톱으로 썰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태연하게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인지 기능이 떨어져 그는 실제로 조금 웃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이미 그의 발이 땅을 지탱하던 일은 몇 년 전에 끝났다. 발은 반복적으로 염증을 일으키고 괴사가 진행되어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후련하게 제거하면 되었다. 발이 없는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수술을 시작하기 전 한 가지 더 조치가 필요했다. 고령의 몸에 무리가 가는 전신마취를 피한 것은 의료진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너무 명료했다. 통증은 전혀 없었지만 전기톱으로 뼈를 썰어낼 때 너무나 큰 소리가 났다. 자신의 발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환자에게 직접 들려줄 수 없었다. 준비된 것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커다란 헤드폰이었다. 마취과 간호사는 음악의 볼륨을 조절해서 할아버지에게 헤드폰을 씌웠다. 약간 큰 음악소리가 헤드폰 틈으로 흘러나왔다. 자기 얼굴만큼 커다란 헤드폰을 쓰게 된 환자는 기분이 좋은지 조금 더 웃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수술은 시작되었다. 정강이를 단순하게 직각으로 잘라내면 안 되었다. 적당한 부위에서 적당한 만큼 잘라서 살을 남겨놓고 덮어야 했다. 집도의는 정확한 절단을 위해 책을 펴놓고 봐가며 꼼꼼하게 정강이 아랫부분을 잘랐다. 뼈를 자르는 굉음이 수술방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내 일은 뼈가 마찰열로 타지 않게 주사기로 톱에 물을 뿌리는 일이었다. 나는 충실하게 톱을 따라 물을 뿌렸다. 환자의 발은 묶여 있었지만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수술은 순조로웠다. 뼈는 깔끔하게 잘렸고 피부는 적당히 그 위를 덮을 만큼 남았다.

하지만 나는 자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방에서는 안정적인 심박 소리와 뼈를 파고드는 톱의 마찰음과 함께 잔잔한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가끔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노래에 심취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고른 노래는 올드팝이었다. 캐럴 키드의 'When I dream'의 선율이 환자의 귀에서 흘러나왔다. 영화 '쉬리'의 주제가로도 유명한 곡이었다. 발이 잘려나가는 그의 귓가에 안온한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지 기능을 잃어버린 할아버지는 마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커다란 톱소리와 피를 뿜는 다리와 함께 그 평온한 표정을 봐야만 했다.

곧 의사들은 절단을 끝내고 남겨둔 살을 덮어 피부를 봉합해 몽당다리를 만들었다. 의료진은 일과가 일찍 마무리되었음에 흡족했다. 그 방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일에 충실했던 셈이었다. 정형외과는 의학적으로 절단을 결정했고, 마취과는 위험이 적은 방법을 택했다. 보호자는 그대로 두면 환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수술에 동의했다. 환자 또한 본인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생명에 위협이 되는 발을 남겨 놓는 일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의료진은 의식이 있는 환자를 배려해서 엄선된 음악을 틀었다. 그 수술방은 주어진 일에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장면은 왜 그렇게 기괴했을까. 정강이를 톱으로 절단하는 의사와 웃고 있는 환자와 은은한 올드팝과 곧 의료용 폐기물이 되어버릴 발의 총합이 말이다.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결국 이런 장면을 낳고야 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동안 지금은 살아있지 않을 그 할아버지의 꿈이었던 것을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었을 때"라고 노래하는 선율을 들으며, 평생 힘차게 땅을 디디던 발이 잘려나가면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웃는 장면을. 다시 걷는 일이 그의 꿈이었을까. 그리고 인간의 육체는 그런 방식으로 사라져가야만 하는 것일까.

결국 인체는 소멸로 향한다. 아무리 인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그 사실을 막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신체와 함께 인간의 존엄 또한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병원이라는 극단적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기묘한 형태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 뒤 응급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날 때마다 그날 잘려나가던 발에 자주 기시감을 느꼈다. 기괴하게 아름다운 존재와 잔혹함, 영문을 모르는 육체가 훼손되는 일. 묵묵히 어떠한 감정 없이 각자의 일에 충실하는 사람들. 슬픔에 맞선 사람들이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발을 자르러 출근하는, 그것이 내가 평생 일하고 있는 병원이라는 공간이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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