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카나리아제도 넘어와 보호도 못 받는 아프리카 아동들

입력
2021.02.25 00:10

세계적 관광지가 유럽행 난민 경유지로
수입 줄어 경제 위축… 지원금도 모자라

지난달 21일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그란 카나리아의 항구에 도착한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관리자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그란 카나리아=EPA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그란 카나리아의 항구에 도착한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관리자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그란 카나리아=EPA 연합뉴스

매년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비던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가 급증한 아프리카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탓에 유럽 대륙 직행이 어려워지자 경유지로 선택됐기 때문인데, 문제는 부모 없이 혈혈단신 넘어온 미성년자들이다.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은 스페인 외무부 발표를 인용,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건너온 난민의 수가 약 2만3,000명으로, 2019년 규모보다 7배 가까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리비아와 지중해를 이용하는 기존 유럽행(行) 경로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비 강화로 막히자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가 난민들의 우회로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CNN의 설명이다.

섬 당국은 당황스럽다. 젬마 마르티네즈 솔리뇨 카나리아 자치정부 인권부 차관은 CNN에 "관광 산업 중단으로 수입이 줄어 섬 경제에 위기가 닥친 상황에 지원이 필요한 난민까지 대폭 늘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제대로 돕기에는 형편이 빠듯하다"고 털어놨다.

18일 스페인 그란 카라니아의 한 호텔 직원들이 스페인 본토로 입국하는 5살 난민 어린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란 카라니야=EPA 연합뉴스

18일 스페인 그란 카라니아의 한 호텔 직원들이 스페인 본토로 입국하는 5살 난민 어린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란 카라니야=EPA 연합뉴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미성년자 난민들이다. 지난해에만 2,600명의 난민 아이들이 섬에 들어왔는데 모두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이다. 유럽에 먼저 정착한 부모와 합류하려고 뒤늦게 떠났거나 비용이 모자라 부모보다 먼저 보내진 경우다. 섬 주민의 임시 보호 속에 가족 찾기나 입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6~12세 아동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13세가 넘으면 보호 밖에 놓이는데, 카나리아 제도 미성년자 난민은 15, 16세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난민 보호소에서 지내며 언어와 기술을 배워야 하지만 인원이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수용 공간이 넉넉지 않다. 코로나19로 영업을 중단한 지역 호텔이 임시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관광지 이미지 훼손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여의치 않다. 이들이 언제 호텔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라고 지난해 12월 미 일간 뉴욕타임스가 전하기도 했다.

아예 사각지대로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이 증명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다. 현지 정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의료 인력이 부족해 연령 파악을 위한 골수 검사를 기다리는 아이들만 5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골수는 연령에 따라 변화한다고 한다.

지원이 없지는 않다. 스페인 정부가 미성년자 난민 거처 설치 및 돌봄에 쓰라고 1,000만유로(약 135억원)를 지원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는 "카나리아 제도 상황은 난민 문제의 다자 간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미성년자 난민들의 보호와 이주를 보장하는 대책을 수립하는 데 스페인은 물론 유럽연합(EU)까지 나설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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