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도왔나… 씁쓸한 러 LNG선 亞 북극항로 겨울 항해 첫 성공

입력
2021.02.24 05:30
13면

"효율성 향상" 업계 반색에 "환경 악영향" 경고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인 러시아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 로이터 자료사진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인 러시아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 로이터 자료사진

러시아 쇄빙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아시아로 향하는 북극항로 겨울 항해에 처음 성공했다. 두꺼운 얼음 탓에 겨울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도가 얼음이 녹으며 가능해진 것이다. 해마다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기후변화 덕을 본 셈이다.

20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선사 소브콤플로트(SCF)는 지난달 5일 러시아 사베타항을 떠난 쇄빙 LNG선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가 약 두 달간의 항해를 마치고 전날 귀항했다고 밝혔다. 선사에 따르면 선박은 북극해 동쪽 항로를 거쳐 중국 장쑤성에 LNG를 운반한 뒤 다시 같은 항로를 따라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동안 러시아와 아시아를 잇는 동쪽 북극항로는 동시베리아 해역의 두꺼운 얼음 때문에 여름철이 낀 7~11월에만 운항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다른 원자력 쇄빙선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반선 단독으로 겨울철 LNG 운송에 성공한 것이다.

항해 기술의 발전이 핵심 요인이라는 게 선사와 조선·해양 업계의 분석이다. 세르게이 겐 선장은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현대적인 장비를 사용해 항해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평균 이동 속도도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고르 톤코피도프롭 SCF 최고경영자(CEO)는 "항로 사용 기간이 사실상 두 배로 늘었다"며 "운송 효율성이 향상돼 러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색했다.

그린피스 소속 선박이 북극해 유빙 사이를 지나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린피스 소속 선박이 북극해 유빙 사이를 지나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은 기후변화다. 지구 최북단 지역에서 보내는 기후 위기의 신호가 바로 이번 항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꼬집었다. 실제 북극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9월 공개된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 연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철 북극의 유빙 규모는 42년 전 관측을 시작한 뒤 역대 두 번째로 작았다.

때문에 경제성이 확보됐다고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게 환경 전문가들의 경고다. 항로를 통과하는 선박의 증가로 배출되는 탄소량이 늘면 북극의 눈과 얼음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 소속 환경 운동가 벤 아일리프는 미 CNN방송에 "이것은 기후변화의 역설"이라며 "얼음으로 보호되던 지역에 연료 유출 같은 새로운 위험이 도래할 게 뻔하다"고 걱정했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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