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은 과거에, 한 발은 미래에 끼운 채 낡고 오래된 것을 샀다

입력
2021.02.24 04:30
<23>빈티지 쇼핑을 하는 이유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온라인 빈티지 쇼핑은 매력과 마력, 향수와 우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게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작년 초겨울, 기억도 나지 않는 어딘가에서 그 옷을 보았다. 스트리트 브랜드와 자동차 용품 회사가 협업해 만든 검정 코치 재킷은 다른 것과 별 차이 없었다. 나일론 소재에, 궁둥이를 살짝 가리는 길이에. 그런데 왼쪽 가슴팍의 전형적인 문양 대신, 어깨부터 밑단까지 노란 선과 하얀 선이 겹쳐서 내려오고, 중간쯤 달 형상이 동그랗게 웃고 있었다. 나는 운동장 용 재킷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순간적으로 홀려버렸다. 그리고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두 가지는 개구리 뛰는 방향과, 취향이 바뀌는 순간이란 걸.

나는 남들이 웅장한 기계와 철물점 용 쇠붙이를 사들일 때 소박한 시계와 티셔츠를 샀다. 눈은 높으나 지갑은 얇았다. 적어도 그 코치 재킷을 보기 전까지는 나만의 청빈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몇 년 전에 나온 제품이었다. 빈티지 사이트엔 진작 올라와 있었는데 이미 냉큼 팔린 채였다. (그래서 어떤 사이트 홈페이지는 이렇게 으름장을 놓는다. “망설이면 뺏긴다.”) 나는 세제 거품처럼 부글대는 마음으로 다른 사이트를 찾았다. 꼭 옛날 시골 가게나 친척 어른의 다락방을 뒤지는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죽어도 사야 한다고 계속 내 어깨를 밀었다. 그건 일종의 스포츠이자 발을 디디면 빠져나올 수 없는 탐험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미국에는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트에서 팔린 가격의 네 배라는 걸 알고 그쪽으론 마음을 싹 접었다.

나는 남자 우주의 연구실이 어디 있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의 구매 인생 전부는 준비 기간과 같았다. 빈티지 의복의 근원지는 넘쳐나는 자카드와 트위드에 수십 가지 종류의 트렌치 코트, 신고 걸을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의 부츠, 한물 간 NBA 올스타에게 어울릴 운동화, 거죽이 벗겨진 벨벳 재킷, 윤기 잃은 캐시미어 코트, 색 바랜 폴리에스테르, 닳았으나 그대로 폼 나는 데님의 향연이었다. 거의 새것인 진갈색 양가죽 점퍼와 스웨이드가 트리밍 된 6겹 캐시미어 스웨터라면 제아무리 까다로운 외삼촌이라고 해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핸드백은 라벨도 떼어지지 않은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분석가도 아니건만 가방을 누가 위탁했는지, 왜 되팔았는지 그 마음이 다 보였다.

무엇보다 빈티지 독립 판매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너무 놀랐다. 일본과 유럽, 미국 빈티지에, 비슷한 항목 분류가 엇비슷하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집단적이진 않았다. 뉘앙스 넘치는 사진으로 아이템 하나하나 선별한 듯 보이는 곳, 왕년의 스타일북에서 뛰어나온 듯 그저 화려한 곳, 제품 해리티지를 낱낱이 꿰는데다 오프라인 매장 또한 굉장한 곳, 바로크 클래식과 벼룩시장을 합친 쇼 같은 곳, 엉망인 사진을 좌판처럼 올리고 후루룩 호객하는 곳, 미래 구매객들에게 제품 바잉 기준을 소상히 들려주는 곳, 오락과 부가가치라는 유용성으로 존재감을 또렷이 살린 곳(5만원짜리 데님 셔츠에 “가끔 놀라요. 80년대 90년대 갭의 데님 셔츠나 스웨트의 만듦새를 보면. 주지훈만 멋있나요, 정보석도 멋있습니다” 라고 설명을 단 거기 스태프는 패션 에디터가 되고 싶은 걸까? 아님 수필가?) 인간 세상이 다 그런 것처럼 물론 거기도 친절하거나, 교만하거나, 세심하거나, 무심한 성격을 각각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코트와 청바지와 스웨터를 주문했다. 소유의 유일한 동기는 소유일 뿐이었다. 옷장은 ‘언젠가 입겠지’ 더미로 꽉 차 문을 닫을 수도 없지만, 이건 검소한 생활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라면서 나를 속였다. 세월에 꺾인 중고 옷은 빈자의 지갑도 열어젖혔다. 계절이 바뀌면 값은 조금 더 떨어졌다. 용감한 자기애와 끝 모를 지구력만이 적절한 가격대의 적절한 물건을 적절한 시기에 얻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교훈은, 가장 싼 것이 가장 비싸다는 것이다. 결국 입지 않을 걸 샀다는 부록 같은 후회 속에서.

나의 구매 좌우명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내 방에는 내가 나에게, 또 친구들이 나에게 해준 선물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혹한 환경에 견딜 만한 방직과 타원형 토글이 두툼한 검정색 더플 코드, 어두운 하늘색에 세로 주름이 장식적인 라운드 칼라 셔츠, 둥근 깃이 낭만적인 제재소 직원으로 보이게 하는 석탄색 점퍼, 밑위가 짧고 밑단이 적극적으로 넓은 부츠 컷 청바지, 녹색과 연분홍 선이 부들부들 옷감을 가로지르는 동화풍 스웨터…. 그 사이로 질문 몇 개가 파고들었다. 빈티지와 중고와 데드스탁과 구제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왜 좋다고 샀던 것들을 그렇게 경솔하게 다 줘버렸을까? 레트로 사업자는 시대와 감각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일까? 겨울 막바지에 95% 할인을 하면(3,400원짜리 코트라니!) 그래도 남을까? 세상엔 어쩌면 이렇게 옷이 많을까? 또 어떤 경로로 들어올까?

홈쇼핑 쇼호스트 임세영씨가 유튜브를 통해 서울 합정동의 한 명품 빈티지숍을 소개하고 있다. 동영상 캡처

천 갈래로 뻗은 순례 길은 내 자신의 출처와 원칙이라고 믿는 가치에서 벗어난 방법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하지 않던 무심함을 인정해야 했다. 동시에 옷을 위한 나의 신체 사이즈를 알게 되었다. 즉, 몸이 숨긴 의미에 대해 다시 말하게 되었다.

나에게 연하늘색이 어울린다는 것은 발명과 같았다. 빨강은 기피 색인데도 어쩐지 어울렸다. 스트라이프는 갈수록 더 좋아졌다. 검정부터 빨강, 회색 줄무늬 스웨터를 다 가진 사나이가 나 말고 또 있을까? 그 사이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이 새로 좋아졌다.

모두가 반색하는 어떤 브랜드에는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넥타이, 수트, 구두 같은 성인 아이템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이런 걸 입을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쑤시개에 찔린 것 같았다. 전에는 그렇게 좋던 터틀넥이 이젠 갑갑해 보이고, 길이가 짧은 상의도 곧잘 입었는데 지금은 통 부담스러웠다. 무엇이 먼저 변할까? 마음일까, 세월일까?

온라인 빈티지 구매의 효율성은 그늘진 데 있는 매장의 애매한 구석에서 탐낼 만한 옷을 찾고, 낮은 값에 구매하는 스릴을 감퇴시키긴 하지만, 매장에서 이따금 찝찝하게 속는 기분이며, 시종 곁에 찰싹 달라붙은 점원의 압박 축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나 목을 쭉 내밀고 보니 살펴볼 것도 많고 불확실성도 못지 않았다. 결국 기댈 것은 개인의 통제력밖에 없었다.

택배 회사의 문자를 받고 빠닥거리는 비닐 포장을 벗길 때는 상대가 나를 허락할지 거절할지를 통보하는 순간과 같았다.

사이트마다 제품 치수를 표기하지만 도량형이 수시로 바뀌는지 어떤 땐 M사이즈가 소시지처럼 꽉 끼었다. 이 머플러가 캐시미어가 아니라 울이었어? 칭칭 감고 포근하게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에 정전기가 일었다. 이 바지 길이는 줄인 거야, 단을 새로 낸 거야? 피처럼 예쁜 빨강이 아니라 미친 진분홍색이었어? 이 얼룩은 무시할만한 결점이라더니 죽을 때까지 마음에 남을 것 같아… 때로 “너는 어떻게 나한테까지 왔니?” 하며 코트를 덮고 잠든 적도 있었다. 기대와 다를 때는 자책이, 예상보다 멋질 때는 감격이, 생각과 똑같았을 때는 으쓱거림이 순서를 바꾸며 집적거렸다.

어떤 완고한 이들은 중고 쇼핑을 아주 거북해한다. 남이 쓰던 물건이 풍기는 반문화와 전 주인의 사념이 깃든 불길함을. 하긴 빈티지 캘리백조차 더러운 휴지가 뭉쳐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진실은, 우리가 밟은 땅 아래는 다 무덤이고, 우리가 맡는 공기엔 피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시절에 남성복 진화는 크게 세 단계를 보인다. 첫 번째는 군복, 두 번째는 작업복(특히 청바지), 세 번째는 스포츠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 과정은 남성다움과 판타지, 영웅적 이상에 대한 관념의 진화와 같다.

빈티지 사이트는 종종 퀴퀴한 냄새가 나는 구제 가게와 접근 불가 제품으로 기 죽이는 상점 사이 사이에서 새 발굴터가 되었을까? 옷의 정글 속에서 방금 전 가상 장바구니에 담은 빈티지 랑방은 일군의 입맛에 몰랐던 불을 지폈을까? 오늘 문득 들여다 보니 재봉의 파괴 장면을 목격한 기분이 든다. 상위 계급의 물건과 하위 계급의 물결이 넘실대고, 파빌리온 도상학 내부의 모든 것이 대체된 시절에는. 어쨌든 중고 옷이 남성복의 또다른 주제이자 기원, 절대 터지지 않았던 패션 버블이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패션은 늘 새로운 환상의 땅을 향하기 마련이니까.

옷 자체는 독립된 사물과 같아서 오래된 옷은 하나의 박물관을 닮는다.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서로 유행과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나의 에드윈은 청바지일 뿐이지만 어쩌다 바늘땀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한다. 한 발은 과거에, 또 한 발은 미래에 끼운 채.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매력과 마력, 향수와 우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게임이.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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