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 내려 금지를" 공무원 '시보떡 문화' 비판 커진다

입력
2021.02.19 09:00

'시보 해제' 막내 공무원이 떡·간식 나누는 문화
누리꾼 "사라져야 할 악습"... 종로구 "없애겠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시보떡' 문화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무원 사이의 문화인 시보떡이 밖으로 알려진 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보떡을 둘러싼 공무원들의 고민과 비판 섞인 목소리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내 여자 동기는 시보떡 때문에 운 적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여자 동기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백설기만 돌렸는데 옆 팀 팀장이 받자마자 어이없다는 표정 (짓더니) 마지못해 고맙다고 해놓고 나중에 걔 안 보는 사이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며 "걔가 막내라서 사무실 쓰레기통 비우다가 그걸 보고 그날 밤새 울었다"고 알렸다.

이 글을 계기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에 6개월 근무하고 시보 떼는 신입인데 떡만 하면 되나요?", "전 여름에 시보 뗐는데 직원들이 더운데 떡 싫다고 해서 피자·치킨 샀습니다" 등 시보떡을 두고 고민하는 공무원들의 게시글이 부쩍 눈에 띄고 있다.


도대체 시보떡이 뭐길래

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시보'란 공무원 임용 후보자가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에 일정 기간 거치게 되는 시험 기간 중의 공무원 신분을 말한다. 공무원 임용 후보자들은 보통 6개월~1년의 시보 기간을 거친 뒤 정식 공무원으로 임명된다.

시보 해제를 앞둔 공무원들이 시보 기간 중 함께 일했던 동료(주로 선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돌리는 게 바로 '시보떡'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나는 떡 말고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거 10여 명 있는 부서에만 돌렸다. 1년 동안 얻어먹은 밥이 얼마인데 솔직히 이 정도도 부담이라고 하면 오버"(i*********), "오히려 난 이제 나도 정식 공무원이구나 해서 기분 좋았는데"(슈****)라며 시보떡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당황스럽다고 반응했다.

시보떡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나는 수습 기간 내 점심값을 팀원들이 나눠 내주셔서 부서 이동한 후였는데도 예전 부서에 굉장히 고마운 마음으로 돌렸다"면서도 "근데 한 110명에게 돌리다 보니 부담이 되긴 했다"(아******)는 글을 남겼다.


"벼룩의 간을 떼먹네", "공문 내려 전면 금지해야 한다"

지난해 7월 11일 광주 서구의 한 중학교에 마련된 국가직 공무원 9급 필기 시험장에 수험생들이 줄 서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1일 광주 서구의 한 중학교에 마련된 국가직 공무원 9급 필기 시험장에 수험생들이 줄 서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다수 누리꾼은 시보떡 돌리기가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회사에서 인턴 끝내고 정규직 됐다고 떡 돌리나. 안 돌리잖아", "2021년 맞냐. 이사 떡도 안 돌리는데 꼴값 떤다" 등 시보떡 돌리기가 현재 시대 상황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시보를 마치고 공직 생활을 갓 시작한 신규 공무원을 축하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시보 해제 기념 턱'을 내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문화가 의아하다는 누리꾼도 많았다.

이들은 "월급 겨우 160만원 받는 신규한테 뭘 그렇게 얻어먹으려고. 진짜 이해 안 된다. 없애라", "눈을 의심했다. 공무원 9급 월급 해 봤자 그거 얼마나 된다고. 벼룩의 간을 떼먹네"라면서 "공문 내려서 아예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보떡을 경험한 일부 공무원들은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글을 올려 시보떡이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시보 끝나기 얼마 전부터 윗사람이 한턱내라고 계속 바람 넣길래 뭘 말하는 건지 몰라 스트레스받다가 케이크랑 간식거리를 사 왔는데 엄청 눈치 주고 안 먹는다 그러더라", (n******), "처음 들어오면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인데 모르는 수십 명에게 떡 나눠주면서 인사까지 해야 한다? 힘든 일이다"(l******) 등의 댓글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시보떡을 나누고도 이후 오가는 뒷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과 인원에 따라 다른데 나는 40명 정도한테 돌렸다. '누구는 뭐 돌렸다'고 비교하고 '센스 있는지 보자'고 부담 주는 거 때문에 더 싫다"(작*******), "떡 받은 꼰대들이 '이 떡은 별로네. 저번에 누군가 돌린 떡은 맛있었는데' 그딴소리 해대지. 100명에게 돌리면 살림 거덜남"(민***)


국회 상임위까지 등장한 시보떡...행안부 장관 "확인하겠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시보떡을 향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도 움직이는 모양새다.

17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시보떡 관행에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언급하자 "관련 사안에 대해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이어 "우리에게 미담이었던 문화가 세대가 바뀌면서 힘든 고통이 될 수 있다"며 "장관과 차관이 조사해 없어져야 한다면 없애고 보완해야 한다면 아름다운 미풍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는 18일 시보떡 문화를 없애고, 구청장이 신규 공무원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종로구는 올해부터 구청장이 신입 공무원에게 '격려 메시지'와 '도서'를 보내고, 배치받은 부서의 선배 직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다과를 지원하기로 했다.

종로구는 "그동안 공직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잘못된 조직 문화를 파악하고, 사회 초년생에게 경제적 지출이 강요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오히려 구 차원에서 공직의 첫 시작을 축하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은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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