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들의 인공호흡기가 되어야 할 한국

입력
2021.02.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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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통째로 환불받고 싶다.”

사람들은 지난 1년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였고, 지금도 그 터널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은 사회적 연대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가난한 이에겐 더욱 가혹하다.

감염병이 확산되며 지난해 7월 떠나온 카메룬의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2013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의 소임을 맡아 도착한 카메룬은 연간 보건 지출 규모가 우리의 건강보험 지출의 2.1%에 해당하는 1조5,000억원에 불과한 빈국이었다.

인구 200만의 수도에도 번듯한 응급실이 없었다. 당시 수도 야운데에 위치한 4대 국공립종합병원에서 실제 가동되는 응급병상은 5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전기로 작동하는 의료장비는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고, 구급차 역시 10대가 안 됐다.

코이카가 파견한 23명의 봉사단과 자문단이 세운 국립응급센터가 개원한 지 며칠이 지나 열 살 남자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센터로 이송돼 왔다. 가망이 없어 보였던 아이는 놀랍게도 다음 날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어린 아이가 새벽에 우물에서 물을 긷지 않아도 됐다면, 이런 위험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응급센터의 개원이 1주일만 늦었어도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카메룬에서 귀국 후 중환자실에서 코로나19 중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모두 호흡이 곤란한 환자들이다. 의학용어로 호흡곤란은 ‘호흡의 짧음(shortness of breath)’이라고 표현한다. 짧은 호흡은 환자의 증상을 더 악화시킨다. 인공호흡기의 기계호흡과 환자의 자발호흡이 서로 맞아야만 한다.

6년8개월 동안 카메룬에서 느낀 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긴 호흡과 조화로운 호흡의 중요성이다. 야운데 응급센터는 가난한 죽음을 막기 위한 일종의 인공호흡기라고 할 수 있다. 인공호흡기를 떼기 위해서는 온전히 자발 호흡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개발 협력이란 결국 상대 국가가 자발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도 한때 가난한 나라였다. 전쟁의 폐허와 빈곤에서 벗어나 이젠 선진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유능한 의료인력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를 위한 인공호흡기가 되길 소망한다.




정중식 성남시의료원 의사(전 카메룬 야운데응급센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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