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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같이 쓰던 부부인데"... 윤정희 방치 논란 진실은?

입력
2021.02.07 16:20
수정
2021.02.07 16:3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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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백건우씨가 2013년 5월 '섬마을 콘서트' 행사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MBC 제공

윤정희, 백건우씨가 2013년 5월 '섬마을 콘서트' 행사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MBC 제공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원로 배우 윤정희(77ㆍ본명 손미자)씨가 프랑스에서 가족으로부터 방치된 채 지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명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75)씨 측은 “해당 내용은 거짓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5일 ‘외부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영화배우 ***를 구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의 제목은 원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 대신 ‘윤정희’로 명시돼 게재됐다가 삭제됐다. 국민청원 청원인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으나, 이름이 ***으로 표시되고 관련 상황을 호소한 블로그 주소도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1960~1970년대 문희ㆍ남정임씨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히며 충무로를 풍미했던 배우다. 1974년 프랑스 파리로 영화 유학을 간 후 76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씨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다. 2019년 지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알츠하이머가 악화됐다는 사실이 알려져 영화 팬들을 놀라게 했다. 윤씨는 74년 이후 프랑스에서 거주해 왔다.

청원인은 윤씨가 “남편과 별거 상태로 배우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파리 외곽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홀로 외로이 알츠하이머와 당뇨와 투병 중”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근처에 딸(진희씨)이 살기는 하나 직업과 가정생활로 본인의 생활이 바빠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며 “배우자와 딸로부터 방치된 채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서 나가지도 못하고 감옥 같은 생활을 한다”고 덧붙였다.

백씨 측은 즉각 반박했다. 백씨의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7일 “(윤정희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요양병원보다는 가족과 가까이서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인 백진희의 아파트 바로 옆집에서 백건우 가족과 법원에서 지정한 간병인의 따뜻한 돌봄 아래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게시 글의 내용과는 달리 주기적인 의사의 왕진 및 치료와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게시 글에 언급된 제한된 전화 및 방문 약속은 모두 법원의 판결 아래 결정된 내용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청원인은 “딸에게 (윤씨의) 형제들이 자유롭게 전화와 방문을 할 수 있도록 수 차례 요청했으나 감옥의 죄수를 면회하듯이 횟수와 시간을 정해줬다”며 “전화는 한 달에 한 번 30분, 방문은 3개월에 한 번씩 2시간이다.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있고 인간의 기본권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씨 측은 방치 주장이 나온 배경으로 “2019년 5월 1일 윤정희가 파리로 돌아가며 시작된 분쟁”을 언급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윤씨의 동생들은 2019년 백씨 부녀를 상대로 ‘윤씨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으며 윤씨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금전적 횡령이 의심된다’는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프랑스 법원이 백씨 부녀를 윤씨의 재산ㆍ신상 후견인으로 지정한 데 대한 이의신청이었다. 소송은 지난해 11월 파리고등법원에서 동생들이 최종 패소했다.

백건우, 윤정희씨가 1976년 결혼식에서 축하주를 함께 마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건우, 윤정희씨가 1976년 결혼식에서 축하주를 함께 마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배우 윤정희씨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부부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배우 윤정희씨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부부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씨가 알츠하이머로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게 되기 전까지 부부는 항상 붙어 다녔다. 백씨의 연주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윤씨가 매번 동반했다. 윤씨가 영화 관련 일정이 있으면 백씨가 함께했다. 두 사람은 휴대폰 하나를 같이 쓰기도 했다. 윤씨는 2010년 4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나는 친구도 엇비슷하고 항상 같이 있으니 휴대폰을 각자 가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인터뷰 장소는 백씨의 연습장 바로 옆이었다. 백씨는 결혼 후 40년 넘게 아내 윤씨의 머리칼을 잘라줬고, 윤씨는 남편 백씨의 공연용 구두를 직접 닦아준 사연이 유명하기도 하다. 백씨는 2019년 12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윤씨가 공로상을 받자 아내를 대신해 “저희 부부는 항상 여성영화인과 한국 영화를 응원한다”는 소감을 보내기도 했다.

윤정희씨가 2010년 4월 16년만의 영화 복귀작 '시' 개봉을 앞두고 한국일보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정희씨가 2010년 4월 16년만의 영화 복귀작 '시' 개봉을 앞두고 한국일보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계에서는 방치 주장에 대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씨와 백씨가 서로를 분신처럼 여겨온 부부인데다 윤씨가 가족들의 돌봄 속에 간호 받고 있는 근황을 최근까지 전해 들어서다. 영화계에 따르면 간병인 3인이 윤씨를 교대로 돌보고 있다. 옆집에 사는 딸이 폐쇄회로(CC)TV를 통해 간병 상황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한 영화인은 “윤씨와 백씨 사이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청원 내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의아해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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