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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에서 죽어간 청년들… '땜질 처방'에 악몽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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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0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고(故) 누온 속헹씨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이주노동자 주거권 개선을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당국의 땜질 처방에 제자리에 머물러 있던 이주노동자 주거권 문제가 법 개정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사업주 의무를 강화하는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이달 중 대표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은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만 명시했을 뿐, 기숙사 시설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201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부속 기숙사를 설치 운영할 때 근로자 건강 유지 및 사생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외국인고용법에도 이 조항을 추가하는 게 고 의원이 발의할 개정안의 핵심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주노동자 기숙사에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따라 △적절한 냉난방 설비 △화재 예방 및 발생시 안전조치를 위한 기구 △화장실과 세면, 목욕시설 △채광과 환기를 위한 설비의 설치가 의무화된다. 후속조치로 비닐하우스와 가설건축물 등 기숙사 하위법령을 손보는 방안이 거론된다.
고용부는 그동안 이주노동자가 사망할 때마다 '면피용' 대책만 내놓으면서, 속헹씨 죽음을 방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18년 1월 고용부는 비닐하우스 숙소 등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이슈화되자, 부랴부랴 '농업 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을 내놨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을 중단하고, 개선하지 않을 경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비닐하우스'는 금지하고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은 허용하는 반쪽짜리 대책이었다.
실제로 숨진 속헹씨가 거주하던 숙소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비닐하우스 속 샌드위치 판넬로 만들어진 가건물이었다. 지난달 고용부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와 공동으로 실시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에서도 설문조사에 응한 이주노동자 3,85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9.6%가 '가설건축물'에 산다고 답했다. 숙소로 쓰이는 가설건축물은 조립식 판넬(34%)이 가장 많았고, 컨테이너(25%), 비닐하우스 내 시설(10.6%)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이주노동자 10명 중 7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온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대책은 이번에도 땜질 성격이 강했다. 속헹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숨지고 나흘 뒤, 고용부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그럼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 숙소는 사실상 허용한 것 아닌가"라는 비난이 시민사회단체에서 쏟아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는 상징적 표현이었다"며 "가설건축물도 농지법·주택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이상 모두 금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사업주의 인식개선 교육을 강화하는 법안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일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은 사업주의 인권 및 근로환경 개선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영인 의원은 "인구감소에 직면한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인권과 생활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며 "안전한 주거시설을 제공하고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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