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바다, 우리의 식탁 위에 외계 지성이 살고 있었다

입력
2021.02.04 14:00
19면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독일의 점쟁이 문어로 알려진 파울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패를 높은 확률로 맞추며 유명해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독일과 스페인이 맞붙은 4강전을 앞두고 파울은 스페인 국기가 새겨진 상자를 열어 홍합을 먹었다. 결과는 파울의 예측대로 스페인이 승리했다. 독일 오버하우젠의 수족관인 라이프센터스에서 살았던 파울은 2년 9개월의 생을 살다 2010년 10월 26일 자연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의 점쟁이 문어로 알려진 파울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패를 높은 확률로 맞추며 유명해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독일과 스페인이 맞붙은 4강전을 앞두고 파울은 스페인 국기가 새겨진 상자를 열어 홍합을 먹었다. 결과는 파울의 예측대로 스페인이 승리했다. 독일 오버하우젠의 수족관인 라이프센터스에서 살았던 파울은 2년 9개월의 생을 살다 2010년 10월 26일 자연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때 인간을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 즉,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정의하던 때가 있었다. 아프리카 곰베 밀림에서 제인 구달이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나서 이 정의는 난센스가 되었다. 구달의 스승 루이스 리키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 이렇게 대꾸했다. “인간을 다시 정의하든가, 도구를 다시 정의하든가,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든가….”

침팬지 말고도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여럿이다. 그 가운데 가장 당혹스러운 동물이 바로 연체동물 문어다. 뜬금없이 나온 문어에 놀란 독자가 있다면, 지금 생각하는 그 문어가 맞다. 푸짐한 해물탕에도 들어가고, 숙회로 초장에도 찍어 먹는 그 문어가 바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인도네시아의 야생 문어는 사람이 먹고 바다에 버린 코코넛 껍데기 반쪽 두 개를 엇갈리게 포개서 가지고 다닌다. 놀랍게도, 문어는 필요할 때마다 코코넛 껍데기를 집처럼 숨는 용도로 사용한다. 같은 연체동물에 속한 달팽이가 평생 지고 다니는 석회질 껍데기(달팽이 집) 대신 코코넛 껍데기를 가지고 다니다 필요할 때마다 조립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2009년 인도네시아 인근 바닷속에서 문어가 코코넛 껍질을 날라 만든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무척추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1999년부터 이 해역 문어를 관찰해온 호주 빅토리아 박물관 생물학자들은 이 문어가 반으로 쪼개진 코코넛 껍데기를 한 곳에 묻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들고 다니며 이동주택으로 사용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2009년 인도네시아 인근 바닷속에서 문어가 코코넛 껍질을 날라 만든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무척추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1999년부터 이 해역 문어를 관찰해온 호주 빅토리아 박물관 생물학자들은 이 문어가 반으로 쪼개진 코코넛 껍데기를 한 곳에 묻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들고 다니며 이동주택으로 사용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문어는 세계 곳곳에서 수족관 뚜껑을 열고 수시로 탈출을 감행하고, 형광등이나 스위치에 물을 쏴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인공조명을 제거한다. 그래서 베테랑 문어 사육사는 아예 상당히 정교한 장난감을 만들어서 수조에 넣어준다. 장난감과 씨름하는 데에 집중하는 문어는 눈앞에 좋아하는 먹잇감을 흔들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사이 몽고메리가 ‘문어의 영혼’(글항아리)에서 고백했듯이, 문어는 사람과 일 대 일로 교감한다. 문어는 자신과 교류한 사람을 기억해서 정확하게 알아본다. 마치 까치(동양)나 까마귀(서양)가 은혜를 갚듯이 문어는 친근한 사람의 피부를 여덟 개의 다리로 사랑스럽게 어루만진다. (어쩌면 맛을 보는 걸 수도 있다.)

이 어루만짐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마치 아미가 BTS에게 그러듯이 문어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몽고메리는 '문어의 영혼'에서 그 매혹적인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는 약물 중독, 발달 장애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쿠아리움에서 문어와 교감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그린다. 감동적이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한 문어의 팬 가운데 의식을 연구하는 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도 있다. (몽고메리와 친구 사이다.) ‘아더 마인즈’는 이 철학자가 문어를 초점에 놓고서 의식의 기원을 탐구해본 책이다. 그는 공공연하게 “문어와의 교류는 지성을 가진 외계인과 만나는 일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더마인즈·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김수빈 옮김·365쪽·1만6,000원

아더마인즈·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김수빈 옮김·365쪽·1만6,000원

실제로 문어는 몸속에 5억 개의 신경 세포(neuron)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신경 세포 약 1,000억 개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개 같은 포유류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더구나 문어의 신경 세포는 뇌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덟 개의 다리에도 흩어져 있다. 문어의 뇌와 여덟 개의 다리는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독립적으로 기능한다. 꼬리가 아니라 뇌가 아홉 개다.

인간과 문어는 5~6억 년 전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서 진화했다. 이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인간과 문어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비슷한 구조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단, 몸의 색을 시도 때도 없이 바꿀 수 있는 문어는 역설적으로 색맹이다) 여기에 더해서 인간과 문어는 각각 육지와 바다에 사는 어떤 동물보다도 복잡한 신경계를 발전시켰다.

고프리스미스는 ‘아더 마인즈’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문어가 이렇게 복잡한 신경계를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결과, 문어는 어떤 다른 마음(Other Minds)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문어와 인간의 의식은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를까? 하나 같이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몽고메리의 ‘문어의 영혼’과 고프리스미스의 ‘아더 마인즈’를 읽고 나서부터는 문어가 뒤집혀서 들어있는 탕이나 문어 숙회를 마음 편하게 먹기가 어려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유럽연합(EU)에서는 이 특별한 동물을 일종의 ‘명예 척추동물’로 간주하고 동물 실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단다.

우주 어딘가에 있으리라 여겼던 지성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의 바다, 혹은 우리의 식탁 위에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떠나지 않은 불편한 질문 하나. 인간과 문어가 교감하고 소통하는 일이 정말로 가능할까. 혹시 우리는 문어마저 인간화해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어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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