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판문점의 USB, 왜 3년 지나 화제의 중심됐나

입력
2021.02.06 17:00

2018년 문 대통령이 USB 전달 사실 직접 공개
당시에도 USB 구체 내용 공개하라는 요구 있어
청와대,?"외교 관행상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


이동식 저장 장치 USB. 게티이미지

이동식 저장 장치 USB. 게티이미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당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가 화제입니다.

당시에는 크게 시선을 끌지 못했던 작은 저장 장치가 3년이 지난 지금 뉴스의 중심에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44분 동안 둘 만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두 정상이 도보다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는데요. 하지만 두 정상은 마이크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이따금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화면의 배경 음향 역할을 했었죠.

때문에 두 정상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당사자를 빼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대북 원전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측에서는 도보다리에서 북한 원자력발전소(원전) 건설 문제에 대한 밀담이 오가고, 남북정상회담 당시 전달했다고 알려진 USB에도 관련 내용이 담긴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는데요.

최근 USB를 둘러싸고 제기된 논란의 쟁점은 세 가지입니다. ①USB가 어디서 전달됐는지 ②USB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③USB에 담긴 문건을 공개해야 하는지.

2018년 당시 언론 보도 내용과 최근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실무를 맡았던 관계자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이 쟁점들을 짚어보겠습니다.

① 어디서 USB가 전달됐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당시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당시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 때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USB를 건넸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몰래 전달한 것', '물밑 거래' 등으로 읽히며 파장이 일었죠.

'몰래 건넸다'는 의혹과 달리 김 위원장에게 USB를 전달했다는 사실은 2018년 당시 문 대통령이 직접 공개했습니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이 산책을 마치고 평화의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 위원장에게 "발전소 문제…"라고 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인데요.

"발전소 문제"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화제가 되자 2018년 4월 30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내가 구두로 발전소를 얘기한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에게 신경제구상을 담은 책자와 PT(프리젠테이션) 영상자료를 (USB에 담아) 넘겼는데 거기에는 발전소 관련 내용이 담겨있다"고 전했죠. 신경제구상은 2015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마련한 경제 발전을 위한 마스터 플랜입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면서 4·27 남북정상회담을 실무를 담당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당시 USB에 대한 뒷 얘기를 공개했는데요.

윤 의원에 따르면 당시 오전 정상 회담이 예상보다 좋은 분위기에서 잘 진행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윤 의원은 문 대통령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데 신경제구상이 담긴 USB를 전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문 대통령께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셨던 것 같다"고 전했는데요.

윤 의원은 USB를 전달한 공간은 도보다리가 아니라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집 1층 환담장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전달된 곳에 대해 "신경제구상 자체가 정상회담의 정식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는데요.

그는 일부에서 꺼내든 도보다리에 대해서는 "그곳에서 두 정상의 모습은 모든 과정이 전 세계에 생중계가 됐다"면서 "그곳에서 어떻게 몰래 USB를 전달하겠느냐"고 반박했습니다.


② USB에 어떤 내용이 담겼나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한 2018년 5월 22일 오후(현지시간)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대화하는 사진을 청와대가 24일 오후 SNS에 공개했다. 청와대는 이 사진을 장하성 정책실장이 찍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정의용 실장, 조윤제 주미대사, 강경화 장관, 윤영찬 홍보수석, 폼페이오 국무장관.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한 2018년 5월 22일 오후(현지시간)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대화하는 사진을 청와대가 24일 오후 SNS에 공개했다. 청와대는 이 사진을 장하성 정책실장이 찍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정의용 실장, 조윤제 주미대사, 강경화 장관, 윤영찬 홍보수석, 폼페이오 국무장관. 연합뉴스

2018년 당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USB를 전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입을 빌려 USB 세부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당시 보도에서 '원전 설치'에 관한 언급은 없었고, 대다수의 언론은 USB에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포함됐다고 전했는데요.

한국일보는 당시 USB에 "북한의 낮은 발전 설비 이용률 개선 계획, 동북아 에너지 공동체를 구축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supergrid·초광역 전력망)' 계획 본격 경협 추진을 위한 전력 문제 해결 계획"이 담겼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일보 2018년 5월 2일 자)

그 밖에도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대북 제재가 풀리면 남북이 함께할 수 있는 경제협력에 어떤 것이 있는지 공동으로 조사·연구하자는 취지", "한반도를 서해 축과 동해 축, 그리고 DMZ 축으로 나눠 H자 모양으로 종합 개발하겠다는 청사진" 등 USB에 남북 경협 관련 문건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는데요.

일부 언론에선 남북 경협의 토대가 되는 북한의 전력 분야 개선과 관련 "남한의 기술과 자본으로 북한의 노후한 수력·화력발전소 개보수, 청진 지역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단지 구축 등 전력 분야 개선 계획"이 담겼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측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원전을 지어서 북한에 퍼주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는데요. 특히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진 문서에 북한, 원전 건설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자 이 문서와 판문점의 USB를 연결 지으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2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한 USB와 동일한 내용의 USB를 미국에도 전달했다"고 말했는데요. 이어 "볼턴에게 건넨 USB에는 남북 간 경협 구상이 주로 담겼고 원전 건설 방안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 같은 내용이 담긴 USB를 전달했다는 점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윤건영 의원(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엄연히 대북 제재가 존재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여러 국제 협약에 가입된 상황에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동의 없이 북한에 원전을 우리 마음대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더구나 한국형 원전의 핵심 기술은 미국산 기술인데 미국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보겠느냐"고 말했는데요.


③ USB 내용 공개되나

정세균 국무총리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 답변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 답변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사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도 USB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2018년 5월 2일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USB와 책자에 담긴 내용은 당연히 우리 국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며 "김정은에게 전달한 USB와 책자를 국민에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는데요.

그 사이 별 얘기 없이 3년이 지난 2021년 또 다시 USB 공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3일 진행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의 공개와 국정 조사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한국형 원전 관련 산업부 기밀자료가 북한에 넘어가지 않았는지, 여당이 앞장서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청와대는 하지만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 구상 USB'에 "원전 언급이 없었다"면서도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는데요.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USB는) 외교상 기밀 문서고, 정상회담 장소에서 건네졌다. (대통령) 기록물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열람도 안 되는 것"이라며 공개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이어 USB를 공개할 경우 "대한민국의 국격과 외교와 또 정부의 정책이나 이런 것들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정세균 국무총리도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연히 의혹을 해소하고 밝힐 것은 밝히는 게 정부의 태도"라면서도 "USB는 정상 사이에서 오고 간 내용이기 때문에 관례적으로나 외교 관행 상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은기 인턴기자
박상준 이슈365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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