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바다에 휘어진 닻, 영덕 바다에 뜬 군함의 정체는?

입력
2021.01.26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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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이가리닻 전망대와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포항 청하면 바닷가의 이가리닻 전망대. 바다로 헤엄치는 듯한 덱이 공중에서 보면 닻 모양이다.

포항 청하면 바닷가의 이가리닻 전망대. 바다로 헤엄치는 듯한 덱이 공중에서 보면 닻 모양이다.

7번 국도는 푸르른 동해를 따라가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다. 직선화 공사로 상당 구간에서 바다와 멀어졌지만, 샛길로 빠져 조금만 이동하면 모래가 고운 백사장과 정겨운 포구, 끝없는 바다가 펼쳐진다. 이웃하고 있는 포항과 영덕 바다에 지난해 이색 전망대와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포항 청하면 월포해수욕장에서 이가리항으로 넘어가는 낮은 언덕에 지난해 5월 닻 모양의 해상 전망대가 설치됐다. 정식 명칭은 ‘이가리닻 전망대’다. 이가리는 도씨와 김씨 두 가문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성촌을 형성했다가 마을이 번성하면서 합쳐진 동네라고 전해진다. 두 성씨와 마을의 역사를 반영한 지명이다.

전망대는 해안도로 옆 울창한 솔숲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높이 10m, 길이 102m 해상 덱이다. 유연하게 휘어지며 수평선으로 헤엄치는 형상인데, 공중에서 보면 영락없는 닻이다. 빨간 지붕의 모형 등대를 돌아가면 둥그런 조타기가 설치돼 있다. 잠시 닻을 내리고 숨을 고르며 무한한 바다를 꿈꾸는 모양새다. 닻의 끝부분 화살표는 이곳에서 251㎞ 떨어진 독도를 가리키고 있어 국토 수호의 염원도 함께 담았다고 한다.


포항 청하면의 이가리닻 전망대는 지난 5월 개장한 이래 지역의 명물로 떠올랐다.

포항 청하면의 이가리닻 전망대는 지난 5월 개장한 이래 지역의 명물로 떠올랐다.


수평선을 향해 헤엄치는 듯한 형상이 무한한 항해의 꿈을 자극한다.

수평선을 향해 헤엄치는 듯한 형상이 무한한 항해의 꿈을 자극한다.


전망대는 단순하지만 발아래 펼쳐지는 바다 풍광은 넓고 시원하다. 초록색 바닷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일렁이는 파도가 주변 바위에 부딪히면 하얀 포말이 부서진다. 수평선만 바라보던 바다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개방하기 때문에 전망대에서 일출을 맞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바다 조망이 뛰어난 곳이었다. 전망대에서 월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언덕은 조경대라 불린다.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이라는 명칭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황여일이 1587년 '엷은 안개 저녁 햇살에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 이곳을 방문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이가리닻 전망대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약 13㎞ 올라가면 포항과 경계인 영덕 남정면 장사해수욕장 바닷가에 거대한 군함이 한 척 떠 있다. 전함 모양을 한 국내 최초의 해상 전시관인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다.

영덕 장사해수욕장 앞바다의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작적에 투입됐던 문산호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영덕 장사해수욕장 앞바다의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작적에 투입됐던 문산호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좌초한 문산호의 모습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좌초한 문산호의 모습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을 알리고 참전 용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시설이다. 장사상륙작전은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날 장사리 해안에서 펼친 양동작전이자 북한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교란 전술이었다. 학도병 위주의 육군본부 독립 제1유격대대(일명 명부대) 772명은 문산호를 타고 1950년 9월 14일 오전 5시 장사리 해안에 도착했지만, 해변을 불과 30여 m 앞두고 태풍으로 인한 높은 파도에 배가 좌초한다. 물에 뛰어든 유격대원 일부가 숨지는 와중에도 상륙에 성공한 대원들은 북한군의 보급로와 퇴각로를 차단하는 전투를 벌인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수송함인 조치원호가 도착했지만 파도가 높아 육지에 접근하지 못하고, 결국 39명의 대원을 남겨둔 채 철수한다. 6일 동안의 이 작전에서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잊힐 뻔한 장사리 전투는 1997년 참전 학도병들이 정부에 문산호 수색을 촉구하고, 바닷속에서 좌초한 배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2012년 사업비 324억원을 투입해 당시 병력을 수송한 길이 90m, 높이 26m의 문산호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지난해 6월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의 내부에 당시 학도병들의 유격 훈련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의 내부에 당시 학도병들의 유격 훈련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장사상륙작전 참전 용사가 당시 상황을 영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사상륙작전 참전 용사가 당시 상황을 영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념관인 문산호 갑판으로 나가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주변 산과 장사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기념관인 문산호 갑판으로 나가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주변 산과 장사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기념관 1층은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의의와 참전 학도병의 훈련, 유격대대의 결성 과정 등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은 작전 개시부터 종료까지의 상황을 보여 준다. 생존 학도병의 생생한 증언을 영상과 함께 들을 수 있고, 긴박했던 상황을 디오라마로 보여준다. 작전에 참가한 772명의 명패를 전시한 유리 바닥을 지날 때는 절로 숙연해진다. 갑판으로 나가면 자체가 시원한 바다 전망대다. 휘어진 해안을 따라 장사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지고, 뒤편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산자락이 첩첩이 이어진다.

포항ㆍ영덕==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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