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동 근친 성폭력 사건에 '제2의 미투운동' 불붙었다

입력
2021.01.24 19:30
수정
2021.01.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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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근친 성폭력 폭로 수만건
佛 상원 미성년자 성폭력 보호법 통과

30년 전 쌍둥이 의붓아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프랑스 유명 원로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 AFP 연합뉴스

30년 전 쌍둥이 의붓아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프랑스 유명 원로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 AFP 연합뉴스

유명 원로 정치학자 올리비에 뒤아멜(70)의 아동 성폭력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프랑스(본보 1월 15일자 보도)에서 최근 ‘제2의 미투운동’이 거세게 불붙고 있다. 뒤아멜이 30여년 전 당시 10대였던 쌍둥이 의붓아들을 수차례 강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파장이 오랜 세월 감춰졌던 근친 성폭력 문제로 확대됐다. 트위터에는 ‘#MeTooInceste(나도 근친 성폭력을 고발한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피해 폭로 글이 쏟아지고 있다. 어렵게 용기낸 피해자들을 향한 연대와 지지도 넘쳐난다.

사건은 이달 초 변호사 카미유 쿠슈네르가 책 ‘라 파밀리아 그랑데(대가족)’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쌍둥이 남동생이 의붓아버지 뒤아멜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뒤아멜은 국립정치학연구재단(FNSP) 이사장 자리에서 쫓겨났고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안이 워낙 민감하다 보니 사회적 분노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TV프로그램에서 쿠슈네르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까지 진행자에서 물러났을 정도다.

억눌렸던 목소리는 트위터에서 터져 나왔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주의 단체 ‘누 투트(Nous Toutesㆍ우리 모두)’는 16일 근친 성폭력 피해자 150명과 함께 ‘미투운동’을 시작했는데, 다른 피해자들이 가세하면서 일주일 만에 피해 고발이 수만건으로 늘어났다. “나는 여섯 살이었고 가해자는 오빠였다. 부모님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가해자 삼촌은 내게 초콜릿을 사주곤 했다”는 글도 있다. 누 투트 활동가인 마들린 다 실바는 “근친 성폭력의 문제는 침묵이다. 이제 피해자들은 더는 침묵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근친 성폭력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조사에서 프랑스인 10명 중 1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4분의 3이 여성이고, 가해자 98%가 남성이었다. 근친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부대표 파트리크 루와즈뢰르는 “남성 지배 권력 문제뿐 아니라, 얼마 전까지도 푸코와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들이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자유 연애의 표현’이나 ‘어린이의 쾌락권’으로 옹호했던 프랑스 특유의 문화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서구 국가들과 달리 프랑스엔 근친 성폭력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은 재판에서 성관계가 합의된 것인지 여부를 사안별로 판단하기 때문에 가해자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의회도 나섰다. 상원은 13세 이하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와 성폭력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법을 21일 통과시켰다. 공소시효는 30년인데, 40년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아동 성폭력 및 근친 성폭력 퇴출을 위한 법 개정을 법무장관에게 지시하고 추가 대책을 약속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선 아이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수업을 개설하기로 했다. 추후 심리 치료도 지원한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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