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도 기초생활비 받을 이유

입력
2021.01.20 18:00
수정
2021.01.20 18:06
26면
구독

조두순 기초생보제 신청 국민 분노 유발
출소자 공적부조 제공 재범가능성 낮춰?
‘권리로서 복지’ 약화 우려 생각해 봐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달 12일 경기 안산시 안산준법지원센터를 빠져 나오는 조두순이 탑승한 관용차량에 일부 시민들이 분노를 표시하며 공격하고 있다. 가로막혀 있다. 안산=연합뉴스

지난달 12일 경기 안산시 안산준법지원센터를 빠져 나오는 조두순이 탑승한 관용차량에 일부 시민들이 분노를 표시하며 공격하고 있다. 가로막혀 있다. 안산=연합뉴스


등굣길 초등학생을 잔혹하게 성폭행해 12년을 복역한 뒤 지난달 만기 출소한 조두순(68). 중범죄자였던 조두순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볼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출소일 새벽 교도소에서부터 그의 집까지 따라다닌 수많은 기자들, 마치 사형(私刑)이라도 불사하겠다는듯 요란하게 조두순 차량에 달려든 일부 유튜버들 때문에 조두순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경찰이 시민들로부터 그를 지키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지금도 조두순이 장을 보러 대문 밖에 나서기만 해도 무려 ‘단독’보도가 된다. 범죄, 특히 아동성폭행 범죄는 강력한 감정적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에 대중의 관심을 갈구하는 미디어들에게 조두순은 뉴스 가치가 높은 상품일 수는 있다. 아니 있다고 치자.

하지만 얼마 전 조두순이 복지급여(기초생활수급자, 기초연금)를 신청했으며 이 신청이 승인되면 월 최대 120만원 수령할 수 있다고 전한 뉴스는 돌아볼 대목이 많다. 누워서 침뱉기라는 비판을 받을지 몰라도 ‘보도 참사’라는 말도 아깝지 않다.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두순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하지 말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후 열흘 사이에 약 6만명의 시민이 ‘괴물 같은 인간에게 세금 내는게 아깝다’며 공분을 표시했다.

조두순의 악마적 범행으로 평생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시달려야 하는 피해자, 조두순 출소로 떠밀리듯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분노를 잠깐 가라 앉히고 조두순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 생산적 해법으로 이어질지 되물어보자. 아동 성범죄에 대한 법조인들의 감수성을 높이는 작은 압력으로라도 작용할까. 18개의 전과가 있는 아동성폭행범을 고작 12년 형을 살게 한 우리 사법 시스템을 개선하는 불쏘시개라도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형사정책 연구자들은 생계가 곤란한 출소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선 주거 지원, 기초생활 보장, 출소자 신원보증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지난해 7월 조두순을 면담한 교정당국도 이미 그가 ‘출소 후 구체적 사회생활 계획 부재, 불안정한 생활 상태 지속 예상,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게 분명한 그를 공적부조 제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게 재범 방지에 효과가 있으리라는 예측은 합리적이다. 반대로 대중들의 날것 그대로의 분노가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만약 이런 식으로 그의 시민권을 발탁할 경우 앞으로 조두순 같은 가난한 범죄자의 출소는 공동체를 더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이런 논란은 우리 사회의 ‘권리로서의 복지의식’이 이번 사태로 얼마나 취약한 토양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방증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은 이전까지 시혜적 차원에 머물던 빈곤층 생활 보호를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로 전환시킨, 한국복지제도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좌우를 불문하고 ‘한국 공공부조제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안상훈), ‘해방 이후 처음으로 취약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권에 기초한 근대적 공공부조제도’ (윤홍식)이라고 상찬한다. 이후 기초연금, 초중고 무상급식, 아동수당 등 (준)보편복지제도가 속속 도입되면서 시민들은 권리로서의 복지를 내면화시켰다.

제대로된 나라라면 나이, 성별, 능력에 무관하게 누구라도 빈곤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처할 경우 국가가 그를 위험에서 구해야 한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범죄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시민 조두순의 권리 행사에 비난만 하는 일이 공동체에 어떤 도움이 될지 지혜롭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왕구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