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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 만들지 않는 삼성이 프린터 스타트업 지원"

입력
2021.01.20 06:10
수정
2021.01.20 07:4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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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스타트업과 함께 뛰는 대기업들
사내 스타트업 육성· 외부 스타트업 투자 투트랙
"스타트업 생태계 위해 개방 혁신 확대 필요"

잉크나 토너 없이 스마트폰으로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 한 번 설치하면 필터 교체 없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공기 청정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관객 동원이 힘든 예술계를 위한 가상현실(VR) 콘서트.

모두 국내 대기업들이 손잡은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의 기술이다. 특이한 것은 해당 기술과 관련없는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이 지원한다는 점이다. 토너 없는 프린터 '네모닉 미니'를 개발한 망고슬래브를 지원하는 삼성전자는 더 이상 프린터를 만들지 않는다. 공기청정 기술을 개발한 칸필터는 SK텔레콤에서 지원을 받았다. VR 콘서트를 개발한 어메이즈VR는 LG그룹에서 200만달러를 투자 받았다.

하지만 이 스타트업들의 기술은 해당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이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스마트폰 ‘갤럭시S20’을 내놓으면서 '네모닉 미니'를 함께 제공했고 SK텔레콤은 서울 종로 등 스마트 오피스에 칸필터의 공기청정 기술을 도입했다. 어메이즈VR의 VR콘서트는 LG유플러스의 5세대(G) 이동통신 콘텐츠로 들어갔다.

이처럼 국내 대기업들은 내부에서 나오기 힘든 신사업 아이디어를 스타트업들과 손잡고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도입하고 있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대기업 내부에서는 사업과 관련 없는 아이디어를 내놓기 힘들다"며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미래 성장을 위한 혁신 아이디어를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스타트업에서 수혈 받는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특징이 있다. 사내 스타트업을 육성하며 외부 스타트업에도 투자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여기 맞춰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에서 사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2012년 도입한 'C랩' 프로그램이 유명하다. 사업과 상관없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직원에게 자금을 지원해 사내 벤처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분사해 사업화하고 실패해도 5년 내 삼성전자로 복귀할 수 있어 도전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금까지 1,200여명의 직원들이 C랩에 참여해 298개 프로젝트를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랩에 선정된 스타트업들이 발표행사에서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랩에 선정된 스타트업들이 발표행사에서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은 '넥스트 펀드' '카탈리스트 펀드' '오토모티브 펀드' 등을 해외에서 운영하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스마트 센서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다. 이와 별도로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 4개사가 다음달 공동으로 오픈 이노베이션 협의체 ‘오픈 콜라보레이션’을 만들어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아예 '오픈 이노베이션 투자실' 등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오픈 이노베이션을 국내외에서 확대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는 한국 미국 이스라엘 중국 독일 싱가포르 등에 스타트업 발굴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크래들'을 운영한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제로원' 크래들에는 8개 계열사의 54개 사내 스타트업과 외부 스타트업 54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SK는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가 대표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SK텔레콤은 2019년 ‘임팩트업스’라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스타트업을 발굴한다. SK하이닉스는 2019년부터 직원의 아이디어를 사내 스타트업으로 육성하는 ‘하이개라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SK 관계자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조직 문화를 확산해 내부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하이개라지의 핵심 목표"라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은 임팩트업스라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한다.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은 임팩트업스라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한다. SK텔레콤 제공

LG는 외부 스타트업과 협업을 위해 2018년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5개사가 총 4,980억원을 투자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투자업체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했다. 이 업체는 주로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등 신성장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또 2018년부터 사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LG전자에서 'LGE 어드벤처', LG디스플레이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전문업체 마크앤컴퍼니와 함께 '드림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이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1년간 사내 스타트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다. 나중에 분사해 독립할 수 있고 사업이 실패해도 5년내 소속사로 복귀할 수 있다.

LG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지난해 개최한 'LG커넥트 행사'에 참여한 스타트업 에이치로보틱스'직원이 재활 보조용 로봇 수트를 시연하고 있다. LG 제공

LG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지난해 개최한 'LG커넥트 행사'에 참여한 스타트업 에이치로보틱스'직원이 재활 보조용 로봇 수트를 시연하고 있다. LG 제공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 제휴를 명목으로 벤처기업의 기술을 갈취하고 인력이나 아이디어를 빼앗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통과된 지주사들의 사내벤처투자업체(CVC) 설립을 허용하는 CVC법 등이 대기업의 마구잡이식 스타트업 인수를 부추겨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려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스타트업 투자업체 TBT의 임정욱 공동대표는 "요즘 대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동반자의 자세로 스타트업들을 만난다"며 "대기업과 스타트업 모두의 성장을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CVC법은 지주사의 투자부작용을 제한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며 "스타트업도 특허 등 법률적 보호장치를 갖춰 우려할 만한 일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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