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체로키족 언어 지켜라" 코로나 백신도 우선접종

입력
2021.01.17 1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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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키족 14만 중 고유언어 구사 2000명 생존
코로나로 30명 사망... 보호 위해 백신 우선 접종

미국 존스홉킨스 인디언건강센터에서 나바호족 원주민을 위해 준비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설명 브로셔. AP 연합뉴스

미국 존스홉킨스 인디언건강센터에서 나바호족 원주민을 위해 준비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설명 브로셔. AP 연합뉴스

‘그들이 체로키 땅 전부를 가져갔네,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몰아넣고. 우리의 생활방식, 도끼, 활, 칼마저 가져갔네. 우리의 고유 언어도 빼앗고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네…체로키 사람, 체로키 부족, 자랑스럽게 살고, 자랑스럽게 죽네.’

1971년 발매된 미국 밴드 레이더스의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은 자신들이 살던 땅과 언어를 빼앗긴 인디언 체로키족 원주민의 비애를 담았던 노래다. 19세기 초 85음절짜리 체로키 고유 문자까지 만들 정도로 번성하던 체로키족이 정부의 부당한 이동 명령에 맞서다 오클라호마주(州) 북동부로 쫓겨난 일은 미국 원주민사의 비극이자 미 행정부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2021년 초 현재 체로키족 인구는 14만1,000명. 이 가운데 체로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이제 약 2,000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전역을 덮치면서 체로키족 역시 목숨은 물론 고유 언어까지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다고 미 CNN방송은 전했다.

체로키족은 코로나19 확산 통제에서 다른 원주민이나 미국의 많은 지역보다 그나마 나은 상황이기는 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원주민이 많은 나바호족 자치구의 경우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코로나19 감염률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희생자가 급증했던 뉴욕주보다도 많았다.

물론 체로키족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14만 인구 중 1만2,300명 넘게 코로나19에 걸렸고 69명이 숨졌다. 특히 희생자 중 30명 이상이 체로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척 호스킨 주니어 체로키 부족장은 “어떤 언어를 2,000명만 유창하게 할 줄 아는 부족이 있는데 언어 구사자를 잃는다면 모든 삶이 그렇듯이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인 국보를 잃는 것”이라고 CNN에 설명했다.

다행히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체로키족의 경우 일선 의료진과 함께 체로키어 구사자도 1순위 접종 대상에 올렸다. 지난해 12월 14일 미 제약회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975회 접종분이 체로키족에 도착해 의료진부터 접종을 했고, 사흘 뒤 체로키어 구사자도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체로키족은 2018년부터 체로키어 구사자 명단을 관리 중이었다. 이들에게 연락을 취해 최근까지 2,000명 중 600명이 접종을 마쳤다고 CNN은 전했다. 특히 체로키어 구사자는 물론 원로 부족민에게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원주민 내 백신 접종 불신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16일(현지시간) 미 존스홉킨스대 집계 기준 미국 내 누적 코로나19 확진자는 2,354만여명, 사망자는 4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루 사망자도 3,409명(15일 기준)에 달했다. 계획했던 백신 공급도 지연되면서 미국 각 주정부에서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체로키어는 어떻게든 보존할 수 있다 쳐도 미국의 코로나19 후유증은 심각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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