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아는 여성과학자가 왜 마리 퀴리밖에 없나 '띵꺼밧!'

입력
2021.01.16 04:30
12면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에 기반해 여성의 꾸밈을 공작새의 깃털에 빗댄 19세기 영국의 삽화. 빅토리아 시대 진화론은 공작새가 자기의 성적 매력을 위해서 생존력을 낮추는 화려한 깃털을 갖추는 것처럼 여성의 꾸밈노동 역시 '자연적'인 것으로 보며 정당화했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에 기반해 여성의 꾸밈을 공작새의 깃털에 빗댄 19세기 영국의 삽화. 빅토리아 시대 진화론은 공작새가 자기의 성적 매력을 위해서 생존력을 낮추는 화려한 깃털을 갖추는 것처럼 여성의 꾸밈노동 역시 '자연적'인 것으로 보며 정당화했다.


과학과 페미니즘을 동시에 이야기하기란 참으로 난감하다. 대학원에서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고, 같은 시기 거리에서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지냈다. 상아탑 속의 과학을 상상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사회 운동이 과학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다소 낯설 것이며 심지어 반감이 들 수도 있다.

한편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과학을 말하기도 쉽지 않다. 성차별적 설명이 과학의 이름으로 둔갑해 여러 차원에서 여성을 배제한 역사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과학, 특히 진화생물학 이야기만 나와도 진절머리를 내는 페미니스트가 많다. 페미니즘 담론에서도 과학은 유독 빈칸이 많은 분야다.

그러나 과학과 젠더 혹은 여성 혹은 페미니즘의 만남은 내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다. 이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재미난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하려면 나와 과학과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띵꺼밧!" 외치던 과학 선생님과의 만남

중학교 시절 어느 날 학원에 묘한 외모의 과학 선생님이 새로 왔다. 옷차림은 늘 화려했고 치아는 삐뚤빼뚤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과학 이야기를 하다가 젊은 시절 자기가 삭발한 이야기도 하고 클럽이 너무 좋아서 만날 갔더니 한 달 만에 십 킬로가 빠졌다는 이야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수업만 되면 마음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가 침을 튀기며 열심히 강의하면 맨 앞자리에 앉아 간혹 얼굴에 침을 맞아가며 열심히 들었다.

선생님은 자기를 “띵꺼밧”이라고 불러달라 했다. 자신의 수업은 늘 '싱크 어바웃(think about)'하는 수업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그분의 수업은 이전 선생님과는 매우 달랐다. 지식을 바로 알려주지 않고 매번 질문하라고 했다. 달의 모양은 왜 시기마다 달라질까? 띵꺼밧! 계절의 변화는 왜 일어날까? 띵꺼밧!

대화를 주고받으며 알아가는 과학은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띵꺼밧을 자꾸 외쳐대니 평소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에 띵꺼밧을 외치게 됐다. 뜨거운 음식에서 김이 나는 건 왜일까? 차가운 얼음에서도 김이 나는 건 왜일까?

선생님이 늘 옳은 답을 냈던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엉뚱한 대답도 했다. 이를테면 뜨거운 욕조에서 뱃살을 열심히 주무르면 지방이 빠져나간다는 대답 같은 것. 믿기지 않으면서도 혹해서 대중목욕탕 열탕에 들어가 열심히 뱃살을 주물렀다.

띵꺼밧 선생이 남긴 유산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최초의 과학 선생님이 여성이었다는 것. 둘째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도 언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셋째는 고심해서 내놓은 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

질문을 던지는 게 비단 과학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 선생님이 띵꺼밧이었다면 사회학을 전공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회는 암기 과목이고 과학은 띵꺼밧 과목이다, 라는 게 머릿속 고정관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이공계를 택했다.

방언 터지던 신자, '띵거밧' 때문에 무신론자로

문제는 내가 굉장히 신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생겼다. 오전 주일 예배가 끝나면 오후 예배에 가고, 수요 예배에도 가고, 부흥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다가 방언 터지는 수준이었다. 교회 안에서도 띵꺼밧은 계속됐고 그럴 때마다 신의 섭리를 깨닫는 듯했다. 가령 이런 것이었다. 우리 집 보일러는 왜 동파된 걸까? 띵꺼밧... 하나님이 날 추위에 단련시키기 위해서.

과학 띵꺼밧과 교회 띵커밧은 자꾸 부딪쳤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계의 슈퍼스타로 보였는데 무신론 운동을 열심히 벌이는 데다 신앙을 가진 사람을 조롱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초월적 존재에 관한 믿음이 촌스럽게 여겨지는 듯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과학자들에게 경도되어 교회를 그만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과학을 도구로 삼아 신 없는 세계를 좀 더 탐구해보고 싶었다. 방언 터진 기독교인이었다가 갑작스레 무신론 과학주의자가 되었다.

짧은 문장으로 말했으나 대단히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형성해 온 기독교적 세계와 질서가 통째로 사라졌으니까.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들이 역사적으로 수두룩하게 빽빽했다.

이때의 경험이 남긴 유산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 정도로 완고하고 간절하게 믿는 신념도 다른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한 순간에 확신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확신이 무너진 세계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진다는 것.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순진하게도 대학에 가서 처음 배정된 지도교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명색이 지구과학을 전공한 교수이니 과학적으로 안심이 되는 대답을 해주리라 기대했다. 이야기를 들은 교수는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사실은 자기가 목사랬다. 원래 자신도 과학 공부를 하며 교회에 냉담했는데 아버지가 위중한 병을 앓게 됐다. 밤새 아버지 곁을 지키며 한 번만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그날 밤 하나님이 아버지의 장기를 꺼내 깨끗이 닦아내는 꿈을 꿨다. 아버지의 병은 기적처럼 나았고 교수는 신실한 신자가 되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성경 자주 읽으라는 덕담을 듣고 교수 연구실을 나왔다.

이후로 무신론이나 종교 대 과학 같은 논쟁에는 흥미가 떨어졌다. 책 좀 읽었다 하는 이공계 애들 대부분은 무신론자였다. 모두가 종교에 회의적이니 되레 종교를 옹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강력한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교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뒤로 한동안은 진화론을 공부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진화론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답하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원시 수프에서 태어난 생명이 한없이 다채롭게 진화해 나갔다는 것, 이들에겐 위계가 없다는 것. 인간이 만들어낸 통념과 직관의 뺨을 후려치는 생명의 이야기를 만날 때면 가슴이 뛰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아름다움 때문에 과학에 빠져든다.

진화론 속 성차별, 다시 '띵꺼밧'을 불러내다

진화론을 공부하는 여정에서 만난 복병은 종교가 아니라 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왔다. 성차별적 발언이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강간이 진화의 산물이랄지, 수렵채집 사회의 영향으로 남성은 도전적이고 쟁취하는 성질이며 여성은 까다롭고 수동적인 성질이랄지. 여성으로서 겪어온 삶과 부합하지 않는 찜찜하고 불쾌한 과학 지식과 반복해서 마주쳤다.

되돌아보니 과학은 아주 여러 층위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있었다. 왜 여성 과학자 이름은 마리 퀴리밖에 모르는가. 왜 온갖 임상시험은 70㎏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두는가. 왜 똑똑한 여자 선배들이 자꾸만 학계에서 사라지는가.


마리 퀴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67년 프랑스에서 발매된 마리 퀴리 우표. 게티이미지뱅크

마리 퀴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67년 프랑스에서 발매된 마리 퀴리 우표. 게티이미지뱅크


진화론에서, 나아가 과학에서 느낀 배신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종교도 버려봤는데. 내가 믿는 세계가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이미 학습한 뒤였다. 뜨거운 물에 뱃살을 짓누르는 띵커밧 선생이나 목사 안수를 받은 지도교수처럼 과학 안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믿음의 양식이 있었다.

과학 또한 인간이 하는 일이며, 그 인간은 다양한 문화와 사회에 속한 존재다. 과학 기술의 세계에는 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도 있고 과학 기사를 쓰는 기자도 있고 연구 결과를 산업에 응용하는 사업가도 있고 연구실의 테크니션도 있다.

이 지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이토록 기나긴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이유는 과학과 페미니즘의 만남이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서다. 사실 종교이건 과학이건 페미니즘이건 띵꺼밧 차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질문을 던져본다는 점에서, 그것을 일상의 순간마다 지속하는 점에서, 한 번 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해석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는 과학과 페미니즘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했던 여정을 다룬다. 과학의 남성 중심성에 실망하여 떠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고쳐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여 취하고 싶다. 과학이 과학의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편향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면, 구성원을 설득함으로써 더 나은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과학 지식이 불편부당한 객관을 보여주며 전문가만이 개입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부터 깨부숴야 한다. 그렇지 않나? 띵꺼밧.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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