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사고 팔 수 있는 것

입력
2021.01.12 04:30
정용준 '미스터 심플'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의 첫 중고거래는 행거였다. 교복 말곤 코트 몇 벌이 걸어둘 옷의 전부였던 대학 신입생 때부터 받는 월급은 족족 옷 쇼핑에 쓰던 사회 초년생 때까지 묵묵히 내 옷들의 거처가 되어준 행거였다. 새 옷장을 구입하며 버릴까 고민했지만 이렇게 쓰임을 끝내기엔 여전히 너무 튼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 마켓에 판매글을 올렸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한 남매가 바로 사갔다.

이후에도 어떤 직장인이 회사에서 단체로 등산을 간다기에 구입해 딱 한번 신고 말았다는 등산화, 누군가 다리를 다쳐 딱 한달 사용했다는 목발 등을 거래했다. 처음에는 ‘그깟 몇 푼 아끼자고 낯선 사람과 연락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나?’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고거래를 해보니 이 거래의 목적은 ‘그깟 몇 푼을 아끼는데’ 있지 않았다. 나에게는 쓸모 없던 물건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의미일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 이 거래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현대문학 1월호에 실린 정용준의 단편소설 ‘미스터 심플’은 중고거래의 이런 미덕을 잘 알고 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인 ‘나’와 아이디 ‘미스터 심플’은 클래식 기타를 중고거래 하기 위해 처음 만난다. 미스터 심플이 내놓은 물건으로, 그는 이 외에도 바이올린, 플루트, 보면대, 악기 거치대, 클래식 CD등을 판매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모든 물건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미스터 심플이 내놓은 물건은 그가 한때 시향에 소속된 호른 연주자였으나 얼마 전 부당해고를 당했고, 아내와 아들마저 자신의 곁을 떠난 뒤 과거를 정리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가 내놓은 물건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함께 살던 H가 죽은 이후 없는 취급을 할 수도, 그렇다고 쓰레기처럼 버릴 수도 없던 H의 물건을 중고 마켓에 팔기로 결심한다.

정용준 작가. 문학동네 제공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들이 남긴 물건들과 덩그러니 남겨진 두 사람은 물건을 사고 팔며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 집에 있던 물건들인데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것들이 낯설어 골똘히 보곤 합니다. 특히 책이 많았어요. 몰랐습니다. 아내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는지. 음악사에 관심이 있었는지도요.”

물론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추억하는 것으로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물건을 방 한구석에 처박아 두기보다는 차라리 상자를 열어보는 것이 때로는 정리에 더 도움이 된다. ‘나’와 ‘미스터 심플’은 각자의 물건을 하나씩 꺼내 보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털어놓음으로써 혼자서는 도무지 풀지 못했던 상실의 실마리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한다.

최근 새해를 맞아 가장 먼저 '팔 물건들’ 목록을 작성했다. 첫 면접 때 입었던 정장,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가수의 CD, 한창 몰두했던 취미의 흔적들. 한때 무척 소중했던 것들이지만 이미 마지막 페이지도 덮인 이야기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물건들이 새로운 이야기의 첫 페이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중고거래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물건만은 아닌 셈이다.

한소범 기자
이.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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