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속에 숨어서 생활하는 나방류

입력
2020.12.26 04:30
13면

편집자주

국립생물자원관 전문가들이 동ㆍ식물, 생물 자원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잎의 일부를 뜯어낸 후 촬영한 찔레어리굴나방 유충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잎의 일부를 뜯어낸 후 촬영한 찔레어리굴나방 유충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산길을 걷거나 공원을 산책할 때, 주변 식물의 잎을 잘 관찰해보세요. 가끔 식물 잎에 누가 낙서한 것처럼 반점이나 선으로 된 기묘한 무늬를 발견할 때가 있으실 겁니다. 이것은 곤충이 잎 속에서 굴을 파면서 생긴 흔적입니다.

식물의 잎에 굴을 파는 애벌레를 영어로는 '리프 마이너(leaf miner)', 한자로는 '잠엽성 유충(潛葉性 幼蟲)', 우리말로는 '잎속살이애벌레'라고 합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영어 표현인 리프 마이너를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편입니다. 애벌레가 식물의 잎 등에 굴을 파는 행동은 나비목 이외에도 딱정벌레목, 벌목, 파리목 등의 곤충에서도 관찰되지만 여기에서는 나비목 곤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비와 나방, 즉 나비목 곤충 대부분은 식물을 먹이로 살아가며, 식물은 나비목 곤충의 주요 생활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비목 곤충의 많은 종은 식물에 붙어서 보호색이나 위장을 통해 자신을 숨기거나, 식물의 잎 등을 말거나 붙여서 은신처를 만듭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은신 방법은 식물의 줄기나 잎 속에 유충이 들어가 굴을 파서 몸을 숨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잎 속은 최적의 서식처

다른 분류군의 곤충들과 비슷하게 나비목의 리프 마이너들에도 산림, 농업 해충이 많습니다. 기주식물의 잎을 직접 갉지 않으므로 겉으로 얼핏 보기에는 별로 피해를 주는 것 같지 않지만, 특정 종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되면 전체 나뭇잎에 피해를 주어 식물의 생장이 크게 저해될 수 있습니다. 특히, 과수 농가의 과일이나 잎의 표면에 눈에 잘 띄는 흔적을 남겨 상품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유충이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잎이나 줄기 속에 숨어 있어 농약을 살포해도 잘 죽지 않는 골치 아픈 해충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해충들에는 은무늬굴나방, 사과굴나방, 귤굴나방, 복숭아굴나방, 배나무굴나방 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잎에 반점 모양으로 청미래굴나방 유충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잎에 반점 모양으로 청미래굴나방 유충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나비목 곤충의 애벌레는 식물의 바깥 쪽에서 잎을 갉아 먹기도 하지만 약 30과 정도나 되는 나방류가 굴을 파서 생활하는 잠엽성 곤충입니다. 곤충의 주요 4대 목 중에서 리프 마이너의 종 다양성이 가장 높습니다. 리프 마이너들은 애벌레 기간 내내 먹이식물의 잎 속에 몸을 숨기고 살지만 종에 따라서는 잎뿐만 아니라 줄기나 열매, 뿌리까지 자신의 거처를 확장하여 굴을 파거나, 굴을 파고 나서 벌레혹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굴의 형태는 분류군과 종에 따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전문가는 잎이나 줄기에 그려진 형태만을 보고도 종이나 속 등 분류군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좀날개나방과, 꼬마굴나방과, 흰꼬마굴나방과, 어리굴나방과, 선굴나방과, 가는나방과, 곡나방과, 메꽃굴나방과, 굴나방과, 창날개뿔나방과, 풀굴나방과 등 많은 과에서 애벌레가 식물의 잎이나 줄기에 굴을 파는 생활을 하며 애벌레와 성충 모두 크기가 매우 작고 분류학적으로 원시적인 분류군이 많습니다.

이들 곤충이 굴을 파서 생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굴속에 들어가면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감출 수 있습니다. 또한 식물의 잎이나 줄기 속 조직 자체가 먹이가 되므로 먹이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고 굴 안은 온도와 습도의 변화가 적어 외부 환경이 바뀌거나 추운 겨울에도 견딜 수 있는 좋은 서식처가 됩니다. 이 때문에 상록활엽수의 잎을 먹이식물로 하는 굴나방류 중 일부는 애벌레가 잎에 굴을 파고 월동하는 종도 있습니다. 이러한 습성을 가지는 나방류는 여러 과에서 나타나며 각자의 진화 단계에서 독자적으로 습득한 공통적인 생활 방식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 굴 모양도 제각각

굴을 파는 애벌레는 굴속 생활에 최적화되어, 머리와 몸이 아래 위로 납작하게 변형되었습니다. 또한 머리 부분이 몸보다 발달해 있으며 입은 앞쪽을 향해 있고 다리는 매우 짧은 것이 특징입니다. 알에서 부화한 어린 애벌레는 식물의 잎, 줄기나 과일 같은 식물의 조직으로 들어가 굴을 파면서 성장하는데, 처음에는 아주 가느다란 굴을 파다가 몸이 성장함에 따라 굴의 크기도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 결과, 줄기나 잎에 여러 가지 모양의 선이나 반점으로 굴의 흔적을 남깁니다. 가는나방과, 어리굴나방과, 창날개뿔나방과 등에 속하는 나방류의 애벌레는 굴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굴속에서 번데기가 된 다음 어른벌레가 되면 탈출합니다.


굴을 파고 있는 청미래굴나방 유충.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굴을 파고 있는 청미래굴나방 유충.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굴나방과의 나방류는 애벌레 시기를 먹이식물의 잎 속에서 보내고 난 뒤에 완전히 성숙하면 잎 바깥으로 구멍을 뚫고 나와 번데기가 됩니다. 이 때 애벌레는 입에서 실을 토해내 방추형의 고치를 만들고 H자형 지붕을 덮거나, 해먹을 걸쳐 놓은 듯한 고치를 만듭니다. 선굴나방과의 나방류의 애벌레는 초기에 굴 속 생활을 하다가 3, 4령쯤 되면 잎 바깥으로 나와 잎 표면을 갉아 먹다가 번데기가 되는 등 분류군에 따라 다양한 생활 방식을 가집니다.

리프 마이너는 굴속에서 애벌레가 성장함에 따라 굴의 크기도 점차 넓어지는데 바깥에서 보아도 잎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 놓은 듯한 고유의 굴 모양이 나타나게 됩니다. 잎에 새겨지는 잠공의 무늬는 손가락(또는 별) 모양, 동그란 반점 모양, 선 모양, 선과 반점이 어우러진 형태 등 매우 다양합니다.

애벌레는 잎 속 조직에 굴을 파면서 전진하므로 대개 굴의 맨 끝부분에 있으며 거꾸로 뒤집혀서 배를 위로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굴을 파며 지나간 곳에는 검은 배설물이 채워져 있습니다. 애벌레의 배설물은 알갱이의 형태로 굴속에 남아있으며 어떤 종은 애벌레가 중간에 구멍을 뚫어 배설물의 일부를 바깥으로 배출하기도 합니다.

리프 마이너를 채집하기 위해서는 산길을 산책하듯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부지런히 길가의 식물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잎 뒷면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잎을 들춰보기도 하고 때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를 아래로 끌어당겨 관찰하기도 합니다. 애벌레가 들어 있는 잎을 따서 햇빛에 비춰보면 굴 안에 있는 애벌레가 보이므로 채집하기 전에 애벌레가 살아있는 상태인지 바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애벌레가 들어있는 것이 확인되면 전정가위로 잎이나 가지를 잘라 지퍼백에 담은 다음 사육을 위해 연구실로 가져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곤충 채집이 어렵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굴나방류의 애벌레는 날씨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채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리프 마이너의 채집은 일정 기간 사육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애벌레가 숨어있는 먹이식물의 일부를 잘라서 연구실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약초나 나물을 불법으로 채취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때도 있습니다.


찔레어리굴나방 유충의 흔적.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찔레어리굴나방 유충의 흔적.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리프 마이너와 식물은 '공진화' 관계

나방류의 채집 방법으로는 곤충의 주광성(빛을 좋아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밤에 불을 켜고 곤충을 잡는 야간 등화채집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물론 낮에만 활동하는 나방류도 있으므로 주간채집을 병행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나방류는 야간채집에 크게 의존하여 표본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리프 마이너 나방류는 등화채집으로 잘 잡히지 않습니다. 크기가 작아 표본을 만들기도, 종의 동정도 어려운데다가 등화채집으로 잘 채집되지 않는 종이 많습니다. 때문에 리프 마이너 나방류는 연구가 매우 어려운 분류군입니다. 따라서 리프 마이너는 야간채집보다는 식물에 굴을 판 흔적을 찾아 애벌레가 들어있는 잎이나 가지를 채집하는 주간채집으로 표본을 수집합니다.

이렇게 채집한 식물과 애벌레는 살아있는 채로 연구실로 가지고 와서 어른벌레로 우화할 때까지 사육해야 건조표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애벌레를 사육한다고 거창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플라스틱 케이스에 휴지 한 장 깔고, 채집한 잎을 몇 장 놓고 뚜껑을 닫는 것이 전부입니다. 잎의 잎자루쪽은 쉽게 건조되지 않도록 물을 적신 솜뭉치로 감싸고, 매일 관찰하면서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휴지를 갈아주어야 합니다.

연구자에 따라 방법이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애벌레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별도의 사육실에서 사육하지 않고 책상 앞이나 가까운 곳에 사육통을 두어 매일 자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리프 마이너의 연구를 위해서는 애벌레를 사육해야 어른벌레의 표본을 얻게 되므로, 애벌레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생태 사진과 생활 습성에 대한 정보, 애벌레나 번데기의 표본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곤충은 식물을 먹이로 삼거나 식물에 몸을 숨기는 등 식물과 함께 밀접하게 생활하는 종이 많아 식물과 함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의 경로를 밟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공진화라고 합니다.


잎의 일부를 뜯어내 촬영한 사과굴나방 유충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잎의 일부를 뜯어내 촬영한 사과굴나방 유충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리프 마이너는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잎 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는 생활을 해서 다른 식물체로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먹이식물이 한 종 또는 몇 종 정도에 불과한 기주특이적인 종이 많습니다. 애벌레가 먹이식물을 가해하면 먹이식물도 이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취하게 되고 다시 애벌레가 이에 대응하는 진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인데, 리프 마이너의 경우에는 이러한 대상 식물종이 한정적이어서 리프 마이너와 먹이식물과의 공진화 관계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리프 마이너와 식물과의 공진화 연구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나비목 곤충은 다른 곤충 분류군에 비해 비교적 많은 종에서 분류학적, 생태학적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크기가 작고 채집이 까다로운 리프 마이너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리프 마이너는 그동안 다른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방제 대상인 해충으로만 다루어져 왔으나, 앞으로는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안능호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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