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를 견딘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입력
2020.12.22 04:30
은모든 '오프닝 건너뛰기'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매년 연말이면 친구들과 모여 '연말정산'을 했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모두 불가능해졌다. 데이오프 제공


근 몇 년 간 연말마다 빼놓지 않고 해온 일이 있다.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100가지의 질문을 담은 ‘연말정산’이라는 독립출판물에 후원하는 것이다. 이 책자 하나면 송년회 모임에서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장 즐거운 만남은 무엇이었는지, 여행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런 질문에 하나씩 답해나가다 보면 올해를 미련 없이 떠나 보내고 내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

그랬던 것이,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두 불가능해졌다. “여행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답할 수도 없을뿐더러 떠들썩한 송년회도 없다. 그러니 문학동네 2020 겨울호에 실린 은모든의 단편소설 ‘오프닝 건너뛰기’ 주인공 수미의 “2020년은 진짜 다 같이 약속하고 삭제해줘야 돼”라는 말에 몇 번이고 밑줄을 그어가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수미는 지난봄에 ‘5월의 신부’가 될 뻔 했다. 남자친구인 경호가 삼 남매 중 하나뿐인 아들인 탓에 본식에 폐백까지 치를 참이었지만, 전 지구에 퍼진 바이러스로 결혼식을 건너뛰고 신혼집에 입성한다.

수미와 경호 커플이 코로나로 인해 겪게 된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술 강사로 일하는 경호는 학원의 휴강이 계속되면서 집에서 쉬게 되는데, 급여가 한달 넘게 밀려도 원장에게 전화는커녕 독촉 메시지 한 통도 보내지 못한다. 참다 못한 수미는 경호를 향해 “돈 처쓸 생각만 하지 말고 전화를 하라고” 화를 낸다. 달콤한 신혼을 즐겨야 할 시기, 수미와 경호는 코로나로 인해 서로의 다름을 확인할 뿐이다.

은모든 소설가. 민음사 제공


소설에는 수미와 경호 커플의 갈등뿐 아니라 코로나로 올해 우리가 겪은 괴로운 일상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언젠가 가봐야지 생각했던 카페는 결국 폐업했고, “코로나 때문에 다들 이게 무슨 고생이니 이게”라는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다. 구체적인 날짜를 지우고 읽어도 2020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물론 수미와 경호의 갈등은 코로나가 초래한 갖가지 비극에 비하면 사소할지 모른다. 노숙인, 한부모 가정,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 삶의 기반이 통째로 흔들린 취약계층이 겪은 가혹한 일들에 비하면, 친구들이 그립다는 나의 투정은 말 그대로 투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기다리는 심정만큼은 공통의 것이라, 나는 수미와 경호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울고 화내고 실망하면서도, 그 와중에 웃을 일들을 찾아내려 애쓰며 2020년 한 해를 견딘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때야말로 문학은 제 역할을 해낸다. 이 단편에 각자의 자리에서 버틴 우리의 한숨과 다짐이 담겨 있다.

여러모로 아쉬운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2020년을 ‘건너뛰고’서는 2021년으로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정산’에 후원 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질문을 주고받을 순 없겠지만, 대신 홀로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써내려 갔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 다시 00 하자” 내 답변은 이것이다.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

한소범 기자
이.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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