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도시락 송년회'...코로나가 바꾼 '슬기로운 직장생활'

입력
2020.12.20 09:15
수정
2020.12.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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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바뀌고 있는 회사 송년 문화
유튜브 보고 직접 배워 도시락 싸고...배달도 활발
수 만원 대 호텔 도시락 판매량은 지난해의 2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직장인들의 회사 생활도 바꾸어 놓았다. 재택근무와 탄력적인 출·퇴근 등 업무 환경뿐만 아니라 식사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 화두가 바로 도시락이다.

오늘 점심은 뭐먹지~를 외치던 고민은 '도시락 출근'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고,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송년 모임도 '도시락 송년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슬기로운 직장 생활'로 도시락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①회사도 직원도 첫 '도시락 송년회'

한 회사에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도시락 송년회'를 하고 있다. 독자 제보

한 회사에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도시락 송년회'를 하고 있다. 독자 제보

직장인 이은경(가명)씨는 17일 입사 이래 처음으로 회사에서 마련한 '도시락 송년회'에 참석했다. 이번 송년회는 특별했다. 우선 저녁 시간이 아니라 낮 12시부터 두 시간가량 점심 시간을 이용했고, 직원들이 모이는 게 아니라 각자 자리에 앉은 채 진행됐다.

자리마다 놓인 3단 도시락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직원들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담기 위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등 여느 송년회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도시락 송년회는 진행 방식도 독특했다.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법한 '사장님의 한 말씀' 같은 딱딱한 연설은 사라지고, 사원 이름을 한 명씩 부른 뒤 칭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참 잘했어요' 같은 배지를 만들어 달아주고, 한 해 동안 고생한 직원들을 위한 선물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회사를 10년 넘게 다닌 이씨는 "올해는 회사도 직원들도 코로나19로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 많았다"며 "지난해 연말만 해도 팀별로 레스토랑이나 술집을 예약해 송년회를 했지만, 코로나19는 회사 송년 문화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②코로나19가 다시 깨운 '도시락 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점심을 포장 배달로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점심을 포장 배달로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뉴시스

직장인 송가영(가명·29)씨는 요새 도시락 싸기 삼매경에 빠졌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회사 방침으로 외부 식당을 이용하기보다 각자 자리에서 도시락 먹는 것을 권장하고 있어서다. 다른 사람과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송씨는 이달 들어 일주일에 3일 출근하고 나머지 날은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게다가 송씨의 부서는 아예 '도시락 출근'을 약속하고 각자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다. 도시락이 아닌 '급식 세대'인 그는 한 번도 도시락을 싸본 적 없단다. 그래서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도시락 싸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먼저 주먹밥과 샌드위치, 꼬마김밥, 볶음밥 등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택했다. 송씨는 "시장이나 대형마트를 가지 않아도 인근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현섭(가명·32)씨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날이면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포장 도시락을 배달시켜 점심을 해결한다. 코로나19 이후 식당을 가는 게 꺼려진 탓이다.

그는 "편의점 도시락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종류가 다양해졌다"며 "식사를 간편히 한 뒤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도시락 문화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③'가성비' 편의점·'가심비' 호텔 도시락 판매 ↑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판매하는 1인용 도시락 '그랩앤고'. 호텔 제공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판매하는 1인용 도시락 '그랩앤고'. 호텔 제공

재택 근무와 함께 직장에서도 가능하면 도시락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하면서 도시락 문화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식당 대신 도시락을 찾고, 송년모임도 홈파티로 즐기는 경향이 늘면서 도시락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면서 '가성비' 좋은 편의점 도시락을 비롯해 '가심비' 자극하는 호텔 도시락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수도권 2.5단계가 적용된 8일부터 17일까지 도시락 매출 신장률은 전월 동기 대비 전체적으로 4.3% 상승했다. 특히 오피스 상권에 있는 CU에선 8.5% 올라 2배 정도 차이가 났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았다는 얘기다.

재택 근무에 따른 도시락 매출도 상승했다. 수도권 지역 일반 주택가에 위치한 이마트24에선 도시락 매출이 같은 기간 3.8% 증가했다.

가격이 꽤 나가는 고급 도시락도 불티나게 팔렸다.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 따르면 3월 테이크아웃 상품으로 내놨던 '그랩앤고(3만원대)' 1인용 도시락 판매가 이날 기준으로 11월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다. 이 호텔은 1인용 도시락 수요가 늘자 송년 모임을 위한 4인용 다이닝 도시락까지 내놨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도 일식당 '스시조'와 중식당 '홍연'의 요리를 담은 도시락(7~35만원) 판매가 지난해와 비교해 99%나 상승했다. 호텔 관계자는 "오피스 상권에 호텔들이 몰려 있는 만큼 호텔의 고급 도시락을 점심으로 찾는 직장인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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