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문파’에 바라자면

입력
2020.12.17 18:00
수정
2020.12.17 18: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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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되돌아본 참담했던 한 해
맹목적 열광이 방조한 시대 퇴행
합리적 지지 견제가 진정한 기여


정권 비판도, 추미애·윤석열 건도 아니었다. ‘백신의 위력 보여주는 한 장의 그래프’라는 화이자백신 임상보고였다. 진보 성향 매체에서 백신의 효과만 건조하게 옮긴 과학기사였다. 초미의 관심인 주제와 분명한 소스, 열린 결론까지 갖춘 꽤 가치 있는 기사로 읽혔다.

기막힌 건 댓글이었다. 태반이 댓바람에 ‘기레기’로 시작해 ‘쓰레기’ ‘걸레’ ‘암 덩어리’ 따위의 폭언으로 이어졌다, 백신 확보에 늦은 정부를 난처하게 할 수 있다는 유추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판단기준은 다만 문 대통령에 대한 유불리다. 그러니 자영업자의 고충에도 흥분하고, 부동산시세 통계에도 시비를 건다. 문 정권은 언터처블이다.

한 해를 돌아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신년 벽두부터 지금껏 온 나라가 코로나와 추미애에 짓눌렸다. 코로나야 천재라 쳐도, 희망 없이 암담한 건 추미애를 전위로 세운 시대의 퇴행이다. 검찰 개혁을 빙자한 국가수사권의 왜곡, 다수결로 분식한 입법독재, 국가정책의 일방 질주, 현실 무감(無感)과 불통…. 지긋지긋한 데자뷔다. 괜찮았던 기억은 BTS와 손흥민의 약진 정도일까?

역사는 YS DJ의 민주화 이전, 아득한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때 “독재의 꿀 빨던” 이들은 사라졌으나 현 집권세력 주류는 당시 운동의 과실을 따먹고 있는 이들이다. 절대악인 적군과 정의로운 아군의 작위적 구별, 배타와 편견, 독선적 권위주의 등은 이들의 ‘시대와 인식의 부조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준다. 최장집 교수의 통찰대로 이들의 민주주의관은 시대변화를 간과한 채 운동권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게 현 시국문제의 본질이다.

정치는 법원 판례처럼 전례들의 집적(集積)이다. 정권이 바뀐들 완전한 단절의 정치란 없다. 올해 새로 쌓인 정치 적폐는 향후 어떤 정권에서든 두고두고 선례로 악용될 것이다. 떳떳치 못한 일마다 “너네도 그랬다”는 핑계로 활용될 것이다. 그걸 끊자고 촛불을 들었고, 그 꼴 다시는 보지 말자고 정권을 바꾼 것임에도.

일 년을 결산하면서 모두에 ‘문파’(혹은 빠)의 행태를 거론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 유사한 행태와 세를 보였던 박사모나 태극기부대는 촛불과 탄핵으로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는 고스란히 문파에 투영돼 살아남았다. 민주적 가치가 아닌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 반대편에 대한 집단적 공격성,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주장과 같은 사실 외면과 억지까지 동전의 양면처럼 닮았다. 종북, 빨갱이가 토착왜구, 기레기, 떡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박사모 등은 요란했지만 영향력은 사실 대수롭지 않았다. 문파는 다르다. 현재 비제도권의 유일한 유력그룹이자, 집권세력의 반민주적 작동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다. 기득권에 대한 실망과 개혁 열망이 정권의 불순한 대중동원으로 이용되고, 동원된 대중이 다시 정권에 무조건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좌파 포퓰리즘식 악순환 고리의 핵심 핀이다.

한풀이의 시한도 이미 지났다. 당파성, 선명성, 맹목성은 이젠 독이다. 야당이 시원치 않으면 사안별 합리적인 시비 판별로 문 정권이라도 제대로 끌어줘야 한다. 국가사회에 별 책임의식을 보이지 않았던 이전 정치집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게 진짜 시대에 대한 기여일 것이다. 캐스팅보트를 쥔 온건 중도층의 이탈조짐이 나타나고, 낡은 정치인들을 소환해 보수대연합 같은 시대착오적 망상을 되살린 것은 문파의 역설적 기여다.

거듭하건대 현재의 비정상을 교정할 힘을 가진 건 그나마 이들뿐이다. 올해와는 다른 내년을 갈망하면서 세밑에 간곡하게 당부하는 이유다. 설령 부질없을지라도.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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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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