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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라던 사람이 '먼지'처럼 사라진다

입력
2020.12.09 04:30
수정
2020.12.09 09: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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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출근길 나의 말은 어김없이 실현된다. 책상 노동자라서다. 전화를 끊으며 어머니가 내게 하는 인사는 매번 "수고해"다. "조심해"가 아니다. 책상 노동자의 어머니라서다.

나는 살아 있다. 용광로에 타 죽지도, 파쇄기에 갈려 죽지도, 비계에서 추락해 이겨져 죽지도 않았다. 고백하자면, 용광로나 산업용 파쇄기 실물은 본 적도 없고, 건설현장 비계에 발 디뎌 보지도 않았다. 매일 평균 6, 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동안, 산재는 나의 세계에서 고작 농담거리다. "이 까칠한 성질, 산재야. 거칠한 피부도 산재야."

나는 오늘이 아닌 먼 미래를 근심한다. 내일이 올 것을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다. 오늘 죽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염려해 영양제를 챙겨 먹고 연금저축을 붓는다. 비통으로 끝난 누군가들의 2020년이 내게는 그저 일상이었다.

나는 '오늘의 안전'을 상속받았다. 중산층 집안의 교육 투자로 물려받은 학력 자본이 오늘 일하다 죽지 않을 특권의 원천이다. 미성숙했던 학창 시절 몇 년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산 보상이 참으로 크다.

세습 중산층인 내가 누리는 특권이 보편의 권리가 되게 하는 최종 책임은 국가의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까는 게 당장 어렵다면, 일터에 생명안전망부터 펼쳐야 한다. '무수저'들에겐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 일하지 않으면 죽는데, 일하다 죽어야 하는 건 부조리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은 생명안전망을 팽팽하게 당기는 매듭이다. 산업노동자의 재해 사망을 막지 못한 사업주와 기업을 엄벌하는 것, 그래서 '노동자의 죽음으로 치르는 비용'과 '노동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는 비용' 사이에서 감히 셈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는 것이 법의 핵심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빨리 정착한 건 근로기준법이 52시간 규정 위반의 책임을 회사 대표에 지운 덕분이다. 김 대리의 과로에 박 과장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저녁 있는 삶'이 벌써 보통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권력과 자본을 빼앗겠다고 위협하는 것. 치사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가지지 못한 연유로 산재에 가족을 잃은 이들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지치도록 요구했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구의역 김군의 유족도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살인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2월 김미숙씨가 면전에서 입법을 요청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달 4일 '노동 관련법'의 정기국회 처리를 주문했다. '중대재해법도 포함되는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는 마당에, 더불어민주당은 법 제정 책임을 슬쩍 놓으려 한다.

"국민 안전을 핵심 국정 목표로 삼겠습니다."(2018년) "우리의 오늘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내겠습니다."(2019년)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겠습니다."(2020년)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늘 달콤하게 약속했다.

사람이 먼저라더니, 먼지처럼 사람들이 바스러져 사라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약속은 이제라도 먼지처럼 가볍지 않았으면 한다.


최문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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