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53조원에 걸맞은 혁신 이뤄야

입력
2020.12.08 06:00
27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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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국방 분야에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장성 진급자가 발표된 것과 2021년 국방예산이 확정된 것이 그것이다. 매년 있는 일이지만 중요한 일이다.

하버드 대학의 로젠 교수는 평시 군사 혁신은 고위 장성들의 인식 변화에 달려있다고 봤다. 안보 환경의 변화로 혁신이 불가피 하다는 것을 이들이 확신해야 제대로 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참담한 전쟁의 패배가 군사 혁신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민간의 강력한 개입도 혁신을 보장하지 못했다. 적이 제기하는 위협이 변화해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도 군 고위 장성들의 인식 변화가 없으면 제대로 된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로젠은 평시 군사 혁신의 속도는 초급장교가 장성이 되는 세대교체의 속도와 같을 것이라 예측했다. 평시 군사 혁신은 길고 고된 과정이다. 전시에는 어떨까. 고위 장성들의 교체는 빨라지고, 혁신의 필요성도 강해지지만 전쟁이라는 혼돈의 상황이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

상황이 이러니 군사 혁신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가 군 개혁은 깃털 베개를 누르는 일과 같다고 탄식한 바 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고, 결국 땀만 뻘뻘 흘리게 된다는 푸념 말이다.

국방개혁을 얘기한 지 이제 15년이 되었다. 로젠이 말한 고위 장성단의 세대교체에 걸리는 기간에는 못 미치지만 이제 그 결과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 군 고위 장성들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진정으로 세대교체가 되었는가. 한마디로 말해 우리 군의 혁신은 어디에 와 있는가.

돈에 관한 한 국민들은 그 동안 군을 힘껏 밀어줬다. 현 정부에서는 더욱 그렇다. 40조원의 국방비로 시작하여 3년 반 만에 53조원의 국방비를 책정했다. 역대급 증가 폭이다. 코로나19로 경제와 보건, 복지 분야 예산 수요가 많음에도 2조원 이상 증가되다보니 예산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항구적 평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엄청난 규모의 국방비를 편성하여 군비경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편에서는 우리 국방비가 북한 전체 GDP보다 많은 규모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 몇 년 있으면 일본의 방위예산보다 많아진다는 데, 왜 우리 국방은 여전히 답답하냐는 불만도 나온다.

국방 분야에서 일하는 관계로 필자는 그동안 국방비에 대한 이런 비판이 나올 때마다 방어하는 목소리를 내곤 했다. 이런 식이다. "왜 국방비만 날 서게 공격하시나. 저출산 예산을 보시라.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투입된 농업 보조금과도 비교해 보시라. 국방비는 그래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정말이지 욕먹을 것을 각오하는 저돌적인 국방비 방어가 아닌가.

그러나 앞으로는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는 국방비 방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군이 결과로 말을 해야 한다. 군의 최우선 목표는 전쟁 승리가 아니라 전쟁 방지임을 깊이 되새기고 있으며, 이를 위한 억제전략이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15년 전에 계획한 국방 개혁의 목표연도가 2020년이었다. 2020년 12월에 이른 현시점에서 군의 각오가 새로워야 한다. 젊은 피가 수혈된 우리 군 고위급들이 53조원이라는 국방비를 가지고 혁신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모습을 기대한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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