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 심각한 문제인가?

입력
2020.12.07 06:00
27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뒤로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이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뒤로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이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 속에 '정치의 사법화'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부의 결정을 통해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거나 정책의 향방을 정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관리가 대의민주주의를 우회하여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견지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늘 그렇듯이 정치의 사법화를 말할 때도 진영논리가 작용한다.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검찰이나 법원이 움직이면 좋은 법치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정치의 사법화가 되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대표적 연구자로서는 '사법통치를 향하여(Towards Juristocracy)'라는 책으로 유명한 랜 허실(Ran Hirschl)을 꼽을 수 있다. 허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의 사법화 사례를 소개하는 가운데 한국의 두 사례를 언급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과 이라크 파병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이다. 허실은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의회가 탄핵한 대통령을 사법기구가 다시 데려다 앉힌 세계 최초의 사건'으로 묘사했다. 국회가 다수결에 의해 소추한 것을 법원이 기각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국의 대통령 탄핵제도가 정치적 결정과 사법적 심판의 복합체로 설계되었음을 간과한 견해이다. 허실은 이라크 파병 헌법소원을 외교안보정책 또한 재판에 회부된 사례로 언급했는데, 사실 헌재는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청구를 각하했다. 정치적 문제를 법원에 가지고 가는 것과 법원이 실제로 어떻게 재판하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반면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한 문제라 보는 사람은 단연 관습헌법을 발명하여 신행정수도 입법을 위헌으로 선언한 헌재 결정을 지목한다. 2012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어떤가? 일제강점기 노동력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찾아준 의의는 별론으로 하고,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는 주심 대법관의 술회는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적 판단을 사법에 개입시켰다는 인상을 준다. 그 후 대법원은 그 여파를 줄이기 위해 외교의 요구를 뒷구멍으로 받아들이려다 사법농단이라는 참사를 빚었다.

정치의 사법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학설 중 하나가 '파편화' 가설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적 의사의 결집도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헌법학자 박종현은 첫 20년간의 헌재 결정을 전수 조사하여 정치적 다수가 견고한 단점정부보다는 여소야대와 같은 분점정부 시기에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많았음을 보여 주었다. 정치학자 채진원은 분점정부 아래에서 헌재의 사건 접수와 처리 건수가 더 많았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정치적 다수가 견고하고 결집된 상황에서 사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이 밀어붙이기로 나갈 때 견제세력은 사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거로 승인받은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합법/불법의 이분법으로 재단해 개입하는 검찰의 태도를 정치의 사법화로 비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거대 여당이 협소한 진영의 관점에 매몰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지금의 갈등은 결국 법원이 다스리게 된다. 진영논리와 내로남불보다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사법관리가 공화국의 갈 길을 결정해 주는 사법통치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듯하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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