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과학자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 지목… “복수할 것”

입력
2020.11.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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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 암살 이후 긴장 재고조
미국 니미츠 항공모함 중동 재배치

이란 핵 개발을 이끌었던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27일 테헤란 동쪽의 작은 도시 아브사르드에서 차량 공격을 받아 숨진 사건 현장의 모습을 이란 국영TV가 공개했다. 아브사르드=AP 연합뉴스

이란 핵 개발을 이끌었던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27일 테헤란 동쪽의 작은 도시 아브사르드에서 차량 공격을 받아 숨진 사건 현장의 모습을 이란 국영TV가 공개했다. 아브사르드=AP 연합뉴스

이란 핵 개발을 이끌어온 과학자가 암살되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은 곧장 최대 적성국인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27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국방부의 연구ㆍ혁신기구 수장이자 핵 과학자인 모센 파크리자데는 이날 수도 테헤란 인근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테러 공격을 받았다. 차량 인근의 트럭에서 폭발물이 터졌고, 이후 괴한들이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파크리자데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파크리자데는 이란 핵무기 개발 계획의 선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유엔 자료와 이스라엘 정보에 따르면 그는 ‘아마다 플랜’으로 불리는 이란 핵 프로그램을 지휘하고, 2003년 프로그램이 좌절된 이후에도 관련 과학자와 기술의 사후 관리를 맡아왔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그가 민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장해 핵탄두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파크리자데를 핵무기 개발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경계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자국 정보기관 모사드가 확보한 이란 핵개발 관련 기밀자료를 공개하면서 파크리자데를 직접 거명하기도 했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파크리자데의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그를 이란의 핵 개발 야심에 도사리고 있는 ‘음지의 인물’이라고 부르며 “파크리자데라는 이름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8년 4월 텔아비브에서 이란 핵개발 관련 기밀자료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파크리자데를 언급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8년 4월 텔아비브에서 이란 핵개발 관련 기밀자료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파크리자데를 언급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 내 고위급 인사들은 이번 사건과 이스라엘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이전부터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무기 보유를 방해하기 위해 이란 핵과학자를 살해했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기 때문이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이스라엘의 역할을 암시하는 비겁함은 가해자들의 필사적 전쟁 도발을 의미한다”며 “이란은 국제사회, 특히 유럽연합(EU)에 부끄러운 이중잣대를 버리고 이런 국가 테러를 비난할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엄중한 복수’를 천명했다. 바게리 총장은 파크리자데의 죽음을 “비통하고 중대한 타격”이라고 표현하고 “우리는 이번 일에 관계된 자들을 추적해 처벌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러조직과 그 지도자, 그리고 이 비겁한 시도의 가해자들은 엄중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영국 일간 가디언은 “누가 파크리자데를 암살했는지 확인되지 않더라도 그의 죽음은 공공연하게 드러났던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격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크리자데의 죽음이 지난 1월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 암살 사건에 이어 이란 내 대중적 분노를 촉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시 테헤란 곳곳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미국에 대한 복수를 외쳤고,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공군기지에 미사일을 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크리자데의 죽음을 다룬 일간 뉴욕타임스 기사를 별다른 코멘트 없이 트위터에 공유했다. 미 국방부는 니미츠 항공모함을 중동 지역에 재배치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어력을 증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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