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TV와 역사의 아이러니

입력
2020.12.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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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컬러TV 시대 개막

80년 당시 문화공보부의 '컬러텔레비전 방송 추진계획' 공문. mois.go.kr

80년 당시 문화공보부의 '컬러텔레비전 방송 추진계획' 공문. mois.go.kr


2018년 미국 역사학자들이 꼽은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 10위에 든 로널드 레이건과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을 비교하는 건 여러모로 부적절하지만, 둘의 닮은 점은 적지 않다. 1980년 레이건의 대선 슬로건은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이었고, 2016년 트럼프의 슬로건은 "Make America Great Again"이었다. 레이건의 슬로건이 겨냥한 것은 냉전에 미적지근했던 카터 전 정부의 무능과 일본의 무역 공세였고, 트럼프가 겨냥한 것은 비백인 이민자에게 우호적이던 오바마 전 정부와 '차이나 쇼크(China Shock)' 즉 저가 중국산 공산품과 러스트벨트 백인 실직자들의 환심이었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조로 삼는 공화당 후보들이 무역규제를 앞세운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이지만, 국익과 정치적 이해 앞에 이념은 포장지일 뿐이라는 냉엄한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80년 12월 1일 한국의 컬러TV 시대가 개막한 배경에도 1970년대 중반 본격화한 미·일 컬러TV 무역분쟁이 있었다. 1970년대 일본산 컬러TV는 미국시장을 30% 넘게 장악하며 미국 제조업 붕괴를 주도했다. 한국의 '럭키 금성'과 삼성전자 역시 1977년부터 시장에 뛰어들어 오일쇼크 와중에 수출 100억 달러(1977년)의 허들을 넘는 데 기여했다. 그 시장이 레이건의 강경 보호무역 노선으로 막힌 거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컬러TV 국내 시판 결정은 수출기업의 재고를 털고 국민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석이조의 선택이었다. 언론통페합으로 문을 닫은 동양방송(TBC) 등의 1980년 11월 30일 고별 방송은 흑백으로 송출됐고, 다음날 '수출의 날' 기념식 장면이 컬러 시험방송으로 송출된 사실이 진짜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권위주의 독재의 유신 '적통'을 이은 전두환 쿠데타 정권의 야간 통행금지 해제(1982년)와 학원 두발 복장 자율화(1983년)도 아이러니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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