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모두 '반기'.. 과거 검란과는 다르다

입력
2020.11.27 04:30
수정
2020.11.27 10:2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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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처럼 '직급 불문' 검사들 집단행동 없었다"
2012년 '중수부 폐지' 사태 등에선 평검사들 주도
추미애 일방통행식 행보... 쌓였던 불만 '폭발' 양상

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뉴스1

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징계청구ㆍ직무집행정지 명령에 검사 전체 직급이 거센 항의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추 장관을 비판하는 검사들의 반발 기류가 과거 수차례의 검란(檢亂)이나 항명 사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로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일선의 이 같은 집단 반발에도 법무부는 대검찰청에 윤 총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다음달 2일 징계위원회 개최를 결정하는 등 강공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추 장관과 검사 집단 전체의 대결이라는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6일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배제 조치를 비판하거나 재고 요청을 하고 나선 검사들은 △고검장 6명 △검사장 17명 △대검 중간간부(차장 및 부장검사) 27명 △서울중앙지검 사법연수원 35기 부부장검사 일동 △서울동부지검 등 전국 20여곳의 평검사 일동 등이다. 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직급별 검사들이 추 장관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이처럼 현직 검사들이 벌떼처럼 ‘항의’에 나선 사례가 과거에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1990년대 초 검사로 임관한 이후, 지금처럼 검사들이 (직급과 상관없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날 검사들의 성명을 보면, 직책을 불문하고 그 내용이나 논리가 대동소이했다. 추 장관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조치에 대해 고검장들은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고, 검사장들은 “성급하고 무리했다”는 표현을 썼다. 문구와 수위는 조금씩 달랐지만, “위법ㆍ부당하다”고 했던 평검사들과 동일한 상황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명에 참여한 한 검사장은 “순화해서 표현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모든 직급이 한목소리를 내는 현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과거 검찰의 집단행동 사례들을 보면 평검사들이 주축을 이뤘고, 간부들은 집단행동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1999년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부인이 연루된 ‘옷로비’ 사건에서 평검사들의 연판장이 돌았고,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기수 파괴 인사를 한다고 했을 때에도 평검사들이 반대 건의서를 올렸다. 2012년 11월 한상대 당시 총장이 대검 중수부 폐지를 추진했을 때, 2013년 채동욱 당시 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감찰 대상에 오른 직후 사퇴했을 때에도 각각 어김없이 ‘평검사회의→성명서’의 공식이 이어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후 정부과천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후 정부과천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종전 ‘평검사 주도’라는 양상과 달리, 이번엔 전국 대부분의 검사가 단체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무엇보다 추 장관의 일방통행식 행보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들과 자주 소통한다는 한 변호사는 “검찰 내에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윤 총장에 대한 이번 직무배제 조치가 명분 없는 ‘찍어내기’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법의 이름을 빌려 무리한 명령을 하니 그간 쌓였던 반발심이 한꺼번에 폭발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검사장을 지낸 다른 변호사도 “윤 총장의 수사방식이나 측근 챙기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도 상당히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데 추 장관이 절차적 합리성도 지키지 않으면서 징계 청구와 직무집행정지 조치를 취하니 검찰 내에 ‘공분’을 일으켜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非)윤석열’ 라인 검사들까지 윤 총장 편에 서도록 한 장본인은 추 장관이라는 뜻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본심이 윤 총장 사태로 분출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복수의 검찰 간부들은 “요즘 젊은 검사들은 조직에 대한 위기감이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정우 기자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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