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GOP 귀순’, 나사 풀린 ‘철책’ 때문에 가능했다

입력
2020.11.26 18:00
수정
2020.11.26 19: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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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최전방 동부전선 장병들이 철책선을 따라 수색·정찰작전 등 철통경계를 펴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달 1일 최전방 동부전선 장병들이 철책선을 따라 수색·정찰작전 등 철통경계를 펴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 3일 강원 동부전선에서 북한 주민 A씨가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을 당시 감지 센서가 작동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핵심 장비의 나사가 풀려 있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몸무게 50㎏ 남짓한 A씨가 북한에서 기계체조를 하면서 단련된 몸으로 철조망 기둥으로 하중을 분산시키며 월책한 것도 원인이 됐다.

합동참모본부는 25일 강원 동부전선에서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공개하며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공개된 장소는 A씨가 실제 철조망을 넘은 부대는 아니다.

합참에 따르면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도입된 GOP 철책은 촘촘한 벌집 모양의 광망 센서가 설치돼 철책을 절단· 훼손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하중이 실리면 경보음이 울리고 ‘5분 대기조’가 즉각 출동한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철책 기둥에도 Y자 모양의 감지 브라켓(벽이나 기둥의 돌출돼 있는 축 등을 받칠 목적으로 쓰이는 도구)과 감지 유발기를 설치해 하중이 실리면 경보음이 울린다.

그러나 기계체조 경력으로 단련된 체형의 A씨는 철책 기둥을 이용한 탓에 광망에 하중이 가해지지 않았다. 철책 기둥에 있는 브라켓과 감지유발기가 이를 감지해야 하지만, A씨가 이용한 철책 기둥에는 브라켓이 없었고, 감지유발기는 나사가 풀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A씨가 3m 넘는 철책을 ‘소리 없이’ 넘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바람이 불어 유발기 나사가 조금 풀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부대에서 매일 육안 점검은 하지만, 유발기의 경우 3m 넘는 기둥에 올라 기계 자체를 뜯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2015~2016년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세부 점검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우리 군은 A씨가 철책을 넘은 뒤 14시간 만에 GOP에서 남측으로 1.5㎞ 떨어진 지점에서 신병을 확보했다. 당시 열상감시장비(TOD) 감시병이 A씨의 월책 장면을 포착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우선 감지유발기 등 과학화 경계 장비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상단 감지 브라켓 미설치 지역 추가 설치 △취약지역 감시장비 추가 보강 및 교체 △과학화경계시스템 운용자 교육 및 정비시스템 강화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이번 경계 작전 전반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관련자 처벌은 하지 않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감지 유발기는 애초 뜯어서 점검할 수 없게 설계됐고 기술적 매뉴얼을 어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대에 책임을 묻기 힘든 구조”라며 “예상 못한 기능적 결함이 발견돼 정비체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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